오피니언 사설

‘여론몰이’식 판사회의는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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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국 법원에서 최근 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소장 판사들이 모여 법원행정처의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검찰 고발을 요구했다. 판사들이 대법원 심리와 판결까지 의심하며 수사기관 개입을 촉구한 것이다. 법관들이 선배 판사를 믿지 못하는데 일반 국민은 어떻겠는가. 지난 1일 실시된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사법 신뢰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어제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 회의는 대상자의 절반도 참석하지 않아 무산됐다. 앞서 전날 저녁에 의사정족수 미달로 회의 개최가 성립되지 않자 이 법원의 일부 판사들이 “형사 고발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e메일을 동료 부장판사들에게 보내며 참여를 독려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판사들이 모여 고발 건의를 결의하는 ‘여론몰이’식 회의에 동의하지 않는 부장판사가 많은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고법 판사회의에서는 56명의 참석자 중 32명이 고발에 반대했고,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만장일치로 고발 반대를 의결했다.

이처럼 이번 사안을 대하는 소장 법관들과 중견 법관들의 입장에는 온도 차가 있다. “재판 거래가 실제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는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믿는 고참 판사가 많은 것이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판사들이 세(勢)를 이뤄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자칫 편 가르기와 내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법원 안팎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런 형국에까지 이른 것은 김 대법원장이 고발이든 아니든 스스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을 판사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시간을 끌며 미뤄왔기 때문이다. 사법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할 책무가 있는 김 대법원장이 오히려 불신과 논란을 자초하는 일만 벌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