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미 정상회담 개최 확정 … 섣부른 타협은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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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미 정상회담이 12일 오전 9시(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미국 백악관이 4일 공식 발표했다. 탈냉전시대 외교사의 한 전환점이 될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 대통령이 적대관계의 ‘불량국가(Rogue state)’ 정상과 직접 만나는 것부터 유례가 없다. 또 지난 70년 내내 미국과 적대하며 고립을 자초해 온 북한은 미국 대통령과의 대담판을 통해 안보 불안과 경제 파탄을 해소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됐다. 회담이 반드시 성공을 거둬야 할 이유다.

한때 취소 발표까지 나왔던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가 확정된 것은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북핵 해법 초안을 마련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 준다. 미국은 ‘일괄 타결’ 원칙을 고수하되 디테일에선 단계적 해법을 가미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북한도 핵무기 반출 등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결과 회담이 성사의 물꼬를 튼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최종 결단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직접 약속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전제 위에서 북한 체제 보장을 확약하는 골자의 공동성명이 나온다면 회담은 성공으로 평가될 것이다. 남은 1주일 동안 북·미 실무진은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막판 조율에 전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다만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 비핵화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 된다. 당장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성급하게 타협할 가능성을 경계해 “북한의 핵은 물론 생화학무기까지 확실한 CVID를 실현하지 못하면 대북 제재 완화를 막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북한 핵 위협의 핵심 타깃인 우리로서도 CVID 원칙은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이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차분하되 냉정한 중재자 역할에 끝까지 충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