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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의 공산권진출 꺼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아시아의 대표」로 자처하며 「정치대국」으로 등장하려는 일본이 여전히 자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정국에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긴 하나 일찍이 일본이 경험하지 못한 성숙한 민주주의가 한국에 뿌리내릴 가능성이 있으며 경제적으로 예상보다 빠른 대일 추격 속도에 적지 않은 관심의 도를 넘어 경계심을 품어왔다.
그 같은 경계심리는 한국기업의 태국 등 아시아 각국 진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국·
소련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 시장참여에 따른 자국 이익과의 충돌을 우려한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한일간의 경쟁적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견제로 대응하거나, 또는 합작· 협력관계로 발전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양국 해당업체들의 이익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일이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뒤에서 이루어지는 일본의 대국적 힘의 사용이다.
작년 일본정부는 미국의 격심한 시장개방압력에 견디다 못해 그 책임의 화살을 한국 등 신흥공업국에 돌리는 선도역을 몰래 해낸 사실도 있다.
그때 베네치아에서 선진 7개국정상들이 경제선언에 신흥공업국들의 책임 분담을 못박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온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소리를 전달하기는커녕 묵살하고 말았다.
지난 86년 일본 총선이 실시될 즈음에는 「나카소네」 (중증근강홍)당시 수상의 혀를 가위로 자르는 포스터들이 길거리에 나붙어 화제가 되었다. 거짓말 잘하는 정치가는 혀를 잘라야 한다는 어떤 유권자 단체의 견해표시였다.
역사 왜곡 문제에 관해서든, 방위예산· 야스쿠니 (정국) 신사참배에 관해서든 일본정치가나 정부고위관계자가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거나 동경에서 하는 발언, 지방에서 하는 발언 내용이 서로 달라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말을 믿어야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 대한 신뢰문제는 그들이 대국화를 지향하면 할수록 한국 등 주변국가들의 절대적인 관심사가 된다.
일본의 태평양경제권 구상은 과거 대동아 공영권 피해 당사국들을 더 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믿음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또 빈국들에 대한 일본의 ODA (정부개발원조) 증액이 경제지배의 과정을 밟지 않는 순수한 세계평화에의 공여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문제에 관해서는 일본 외무성 「오쿠라」 (소창화부) 참사관의 논문에서 지적된 것처럼 일본이 국제적 지위향상과 서구화를 위해 대한관계를 디딤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동경=최철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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