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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8시간→40시간 되면 월급 422만원서 258만원으로 감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시계공장에서 일하는 강모(36)씨는 시급 9500원을 받는 생산직 8년 차다. 지난달 주당 평균 60시간을 일한 그의 월 급여(실수령액)는 377만3000원. 하지만 7월 강씨의 급여는 331만7000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주당 근무 시간이 최소 8시간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강씨는 “집에서 노느니 아이 학원비라도 벌 요량으로 주말 2일 중에 하루 정도는 자원했는데 이젠 학원을 끊던지 주말 알바라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크게 급여 감소와 근무환경 악화 때문이다. 현재 법이 인정하는 주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이다.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 외에 28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할 수 있다. 7월부터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고,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으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 52시간 일할 수 있다.

예컨대 강씨가 최대치인 주 68시간을 일하면 급여는 422만9000원이지만, 7월부터는 최대 급여가 91만2000원 감소한다.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을 철저히 지키면 연장수당(68만4000원)도 받지 못해 급여는 258만5500원이 된다.

자정에도 근무하는 직원들로 환한 서울의 한 오피스빌딩.

자정에도 근무하는 직원들로 환한 서울의 한 오피스빌딩.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전체 근로자(5인 미만 사업장, 특례업종 제외)의 11.8%인 95만5000명의 임금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1인당 월평균 감소액은 37만7000원(11.5%)이다. 역설적으로 임금 감소 폭은 비정규직(17.3%)이 정규직(10.5%)보다 크고, 저임금 근로자일수록 커진다. 청소부나 경비 같은 용역직은 월평균 22.1%(40만1000원), 한시적(20.5%)ㆍ기간제(16.5%)ㆍ파견직(13.4%) 근로자의 급여도 평균보다 많이 감소한다. 강선일 노무법인 혜안 대표노무사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을수록 수당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무 여건이 악화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주요 기업들은 인력을 늘리기보다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5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권세웅 가온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신규 채용이 없으면 근로자는 줄어든 근무시간 안에 그동안 하던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결국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재택근무, 조기 출근같이 ‘근무 아닌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한 정보기술(IT) 대기업 연구원인 윤정준(38)씨는 요즘 새벽 4~5시면 사무실 책상에 앉는다. 업무는 그대로인데 회사가 ‘퇴근 시간 준수’를 엄격하게 관리해서다. 그렇다고 집에서 일할 수도 없다. 보안 문제로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을 가져오기 힘들고, 인터넷으로 회사 프로그램 접속도 불가능하다.

윤씨는 “공식 출근(오전 9시) 전에 일한 시간은 ‘업무준비시간’이라며 근로시간에 넣지 않더라”며 “프로젝트가 잘 돼야 인사고과가 좋고 성과급도 많이 받을 수 있는데 법으로 일하지 말란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제도 안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15년 기준 31.8달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6.8달러)의 68%로 최하위 수준이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결과물이 적다는 의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은 잦은 회의나 복잡한 보고 체계 같은 불필요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근로자 자신도 업무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업종별로 구분한 근로기준법이 달라진 노동 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광고ㆍ기획ㆍ정보기술(IT) 개발 등에선 다양한 직군이 섞여 일하는 프로젝트성 업무가 많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 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기본급은 낮고 초과근로나 각종 수당으로 임금을 채우는 현행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최현주·강기헌 기자 choi.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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