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골짜기」연재를 마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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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벌써 10년 전, 무당 사진을 찍는 친구를 따라 계룡산 중턱의 무가(무가)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그날 밤, 객사한 연인들의 혼을 달래는 굿이 벌어졌는데 마당에 나와 찬 공기를 쐬려니 맞은편 산등성이 하얗게 닦인 눈길로 한 여자가 타박타박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각이었으나 순간 나는 전생에도 이 산길을 걸었구나 생각했다. 머나먼 골짜기였고 그 뒤로 골짜기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인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사람은 인생의 골짜기에서 자기 길을 찾아 헤맨다. 어떤 자는 빛을 발견하여 구원의 자리를 찾고 눈이 어두운 자는 길을 잘못 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한 시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발자취로 이루어지는데 『가까운 골짜기』에서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체제와, 해방을 기도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가려는 예술가의 삶이 대비된다.
예술지상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나는 예술이 본질에 다가가는 한 방법이라고 믿기에 그 힘겨운 발자취를 빛을 좇듯 늘 눈 여겨 보아왔다.
박물관 구석에서 어질게 빛나는 백자, 희로애락을 떠난 살풀이 춤, 잃어버린 모국어를 되찾아준 홍명희의 산문이 내혼을 감동시킬 때, 예술이란 살아있는 시대의 가장 큰 빛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가는 인간이 한 행위임을 확인하게 된다.
예술가는 흔히 특수한 부류로 말해져서 그들의 삶을 심문연재소설로 담는 것이 적합치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현실에 등 돌리고 수도자처럼 치열하게 자기와 싸우는 예술가를 통해 진정한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자 했다.
또 전통사회에 길들여진 주부이나 인간의식이 꿈틀거리는 화자(화군)를 통해 여성들의 삶을 ,재검토하고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에선 여성들의 관계를 사람과 소유에 집착한 모습으로 그린다. 답답하지만 한편은 실상이기도한데 이젠 여성들의 의식도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의 통속극 차원에서 한 단계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이 이데올로기와 허상의 윤리로 경직돼있는 사회를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하도록 기여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도록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중앙일보사와 우정으로 『가까운 골짜기』를 동행해준 오수환 화백 님, 사탕처럼 입에서 이내 녹지 않는 이 소설을 인내심을 가지고 애독해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작가 강석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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