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영화의 산 역사' 獨 리펜슈탈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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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의 골인 모습을 촬영했던 세계적인 기록영화 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장례식이 12일 오후 4시(현지시간) 뮌헨의 오스트프리드호프에서 엄수됐다.

그녀는 지난 8일 오후 10시50분쯤 뮌헨 인근 슈타른베르거 호숫가 자택에서 1백1세로 숨졌다. 리펜슈탈은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 기록영화인 2부작 '민족의 제전'과 '미의 제전'의 감독을 맡아 식민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의 골인 장면을 필름에 담았다.

당시 손기정은 최후 1백m를 11초로 무표정하게 질주했고 결승선에서 아무런 환호도 내지르지 않은 채 통과해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사흘 뒤 리펜슈탈이 손기정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청했을 정도다.

리펜슈탈도 베를린 올림픽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다는 오명이 평생 뒤따랐다.

그녀가 32년 각본을 쓰고 감독.주연까지 맡은 첫 작품 '푸른 불빛'을 관람한 히틀러는 "인위적인 미(美)와 자연의 미를 절묘하게 결합해냈다"며 그녀의 재능을 격찬했다. 히틀러가 "우리가 권력을 잡게 되면 꼭 나를 위한 영화를 만들라"고 부탁하면서 리펜슈탈은 나치의 선전도구가 됐다. 종전 후 전범으로 재판대에 섰다 48년 '나치의 부역자'로 규정돼 석방됐다.

이후 재기에 실패한 그녀는 60년대부터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그녀는 71세에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25년간 인도양 등에서 2천번 이상 잠수하며 수중촬영에 매달리기도 했다. 지난해엔 1백세 생일을 앞두고 해저의 생태를 영상에 담아낸 기록영화 '수중의 인상'을 발표, 최고령 기록영화 감독으로 기록됐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지난 8일 타계한 독일의 사진작가 레니 리펜슈탈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56년 독일을 방문한 손선수(左)와 함께 기념촬영한 리펜슈탈.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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