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았다는 증거, 김동훈씨 진술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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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은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두 사람이 김동훈씨에게 돈을 받고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채권 매각정보를 유출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부총재 등은 "정상적인 기업구조조정 과정으로 부당하게 압력을 넣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 김동훈씨와의 관계=검찰은 채무탕감 과정에서 현대차와 산업은행 최고위층을 연결한 고리가 김씨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박 전 부총재를 지인을 통해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씨가 2001년 박 전 부총재에게 여덟 차례에 걸쳐 사무실과 길거리 등에서 돈을 줬다"고 영장에서 밝혔다. 이 사장과의 관계에 대해 "김씨와 고교 동기동창이자 대학 동문"이라며 "김씨를 통해 현대 측과 채권 매각을 논의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사장은 산업은행 투자본부장이었다. 그러나 박 전 부총재 등은 "개인적으로 만나 돈을 받은 적 없다"고 반박했다.

◆ 낙찰정보 유출했나=검찰은 박 전 부총재 등이 채권매각 시 낙찰가 정보를 빼돌린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현대차 계열사인 위아와 아주금속의 부실채권을 한국자산공사(캠코)에 매각한 뒤 ▶이를 재매입해 ▶구조조정전문회사(CRC)에 파는 과정에 이들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위아의 채권 매입에 8개 CRC 업체가 입찰했는데 산은이 지명한 3개 업체, 김동훈씨가 주선한 5개 업체였다"며 "낙찰 예정가를 미리 알려준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2002년 3월 캠코에서 돌려받은 997억원의 채권을 신클레어 구조조정 전문회사에 795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위아가 신클레어에서 825억원에 채권을 사들여 172억원의 채무를 탕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위아가 신클레어로부터 채권을 다시 사들이고, 산은이 신클레어에 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또 아주금속의 경우 산은은 수의계약으로 채권을 넘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박 전 부총재 등은 "캠코에서 받은 997억원 채권을 일시 매각하려면 할인해야 했다"며 "8개 회사가 경쟁입찰해 신클레어가 최고가인 795억원에 낙찰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박 전 부총재가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모든 과정에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1000억원대의 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을 실무자 선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박 전 부총재는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공식대로 했다"며 "경쟁입찰이어서 부총재라고 해도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직접 증거는 진술뿐"=서울중앙지법의 이종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부총재 등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김씨 진술 하나다"며 "김씨의 진술이 번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영장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보강조사를 거쳐 박 전 부총재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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