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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김문수·안철수 후보 단일화, 가능성 있을까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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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지방선거 하이라이트 서울시장 선거판

문수·철수 겉으론 “거론도 안 한다” #참모들 ‘판 흔들 유일 카드’ 입 모아 #김, ‘통추위 띄워 단일화 성사’ 구상 #안 측 “6월 7일께 단일화 급물살” #선거 뒤 야권재편 주도권 다툼 물려 #준표, 2등 전략으로 연임 노리는 듯 #“정권견제 포기한 우행” 반발도 커 #단일화 불발시 3등 후보 퇴출 위기

지난 22일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한 안철수 후보(왼쪽)와 김문수 후보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단일화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뉴시스]

지난 22일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한 안철수 후보(왼쪽)와 김문수 후보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단일화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뉴시스]

지난 27일 늦은 밤.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 마련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캠프 집무실. 김 후보와 참모진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다음날인 28일 오전 관훈클럽에서 열릴 ‘김문수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와 단일화를 할 것인가”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할지를 놓고서였다. 김선동 의원(도봉을·재선) 등 참모진 상당수는 “단일화하자고 (안철수에게) 화끈하게 제안하자”는 의견을 냈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하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양당이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해 지지율 앞선 사람이 서울시장 후보가 되고, 이를 계기로 양당은 선거 뒤 합당하며 단일화를 양보한 후보에게 최고위원 같은 요직을 주고 차기 대권 주자의 하나로 모신다는 안이었다. 이를 위해 양당은 양당 지도부와 김문수·안철수 등 중진 5명씩이 각각 참여한 통합추진위원회를 즉각 구성해 단일화를 추진하고 선거 뒤 본격적으로 합당을 추진한다는 아이디어도 추가됐다.

김 후보도 “일리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방안을 낸 김선동 의원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회의장을 잠시 나가자 따라 나와 “좋은 의견”이라고 등을 두들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튿날 이 안을 들고 관훈클럽 토론회장에 입장한 김 후보는 단일화 여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단일화 관련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냥 갑니다. 일로매진(一路邁進)입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한국당 내에서 단일화를 강력히 추진해온 김용태 의원(양천을·3선)은 “이제 단일화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며 한숨 쉬었다. “한국당 서울 지역구 의원 중 단일화를 진짜 제대로 밀어붙여온 의원은 나랑 정양석 의원(강북갑·재선) 정도다. 이런 판에 김 후보 본인마저 생각이 없어 보이는 듯한 말을 했다. 서울 지역 우리당 의원들에게 단일화 묘안을 짜내는 회의라도 열자고 전화를 돌렸는데 다들 ‘너무 늦었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여 무산됐다.”

그러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관훈토론이 끝난 28일 밤 김 후보와 통화했다.

왜 전날 밤 결정과 다른 얘기를 했나.
“토론장 입장 직전 보도된 안철수 후보와 박주선 바른미래당 대표 발언이 결정타였다. 안 후보는 내가 찌그러져(지지율이 안 후보보다 떨어져) 자연스레 안 후보로 단일화된다고 주장했다. 또 박주선 대표는 한국당과의 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단일화에 뜻이 있다고 하면 애걸복걸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지 않나. 손뼉도 맞아야 박수가 된다. 그런 소리가 들어갈 때까지 단일화 얘기는 안 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다.”
단일화 여지는 남겨둔 것이네.
“우리가 지금은 (단일화) 말을 못하는 상황이다. 안 후보 주변에선 단일화 협상하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안 후보 본인은 계속 홀로 갈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건 그의 자유다.”
홍준표 대표는 단일화 반대 아닌가.
“홍 대표는 단일화를 바람직하게 생각 안 하더라. 본인이 지난해 대선 때 완주한 것처럼 나도 꿋꿋하게 가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우리가 단일화하자고 제안해도 저쪽(안 후보)에서 받아주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같더라. 그러나 내가 (단일화로) 방향을 세우고 그길로 간다면 내키지는 않아도 존중할 것이다.”
후보끼리 단일화는 문제없다고도 했는데.
“나한테 ‘충북은 단일화해도 된다고 한 것뿐인데 언론들이 내가 서울시장 단일화를 받아들인 양 쓰더라’라고 해명했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는 한국당 서울 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격론에 휩싸여있다. 김용태·정양석 등 여당 지지층이 많은 험지가 지역구인 의원들은 단일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한국당 구청장·광역 및 기초 의원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 시장 후보가 단일화돼야 판을 흔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용태 의원은 “시장 후보가 단일화되지 않으면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서울시 의원 선거는 민주당 후보들이 의석의 90%를 싹쓸이할 것”이라며 “시장도 민주당, 구청장도 민주당, 의회까지 민주당이 장악해 1당 독재 시대가 열린다. 예산과 법안 모두 박원순 시장이 맘대로 하는 ‘원순특별시’가 된다.”고 말했다. 정양석 의원도 “2·3등 후보들(김문수·안철수)이 정책공약을 내봤자, 남북관계를 비판해봤자 먹히기나 하겠나. 판을 뒤집으려면 단일화만이 카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기 당권을 노리거나 한국당 구청장·광역 및 기초 의원 후보들이 크게 불리하지 않은 지역구 의원들은 다르다. 나경원 의원(동작을·4선)은 “이대로 가면 안 후보는 낙선해 선거 뒤 존재감이 없어진다. 시장은 물론 구청장이나 시의원을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큰 미래당도 해체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굳이 단일화를 해서 (안 후보와 미래당을) 살려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당내에 상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일화 반대론은 한국당의 승리가 아닌 ‘김문수 2등’ 전략에 불과해 박원순 민주당 후보의 3선 시장 연임을 헌납하고 야당의 임무인 정권 견제를 포기한 우행(愚行)이란 비판도 상당하다.

특히 단일화를 끝까지 막아 안철수와 미래당의 몰락을 꾀하는 건 야권 내 경쟁자들 싹을 자르고, 당 대표 연임을 노리는 홍준표 대표의 시나리오란 지적도 나온다. 김용태 의원은 “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선동 의원부터 단일화에 개인적으로는 찬성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말을 못 꺼내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워낙 완강히 반대한다”고 전했다.

정양석 의원도 김문수 2등 전략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전략은 홍준표 대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서 그런 생각(2등 전략)은 공유가 되지 않는다. 홍 대표는 김문수를 한국당 의원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데려왔다. 선거판을 뒤엎을 아이디어도 없다. 그러니 단일화를 무턱대고 반대할 게 아니라 토론부터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당 의원들 대부분이 단일화에 공감하고 있다. 김문수도 그런(단일화) 의지를 밝혔다.”

박성중 의원(서초을·초선)은 “현재 한국당 내에선 단일화 반대론과 찬성론이 팽팽히 맞선 상태”라고 전했다. “지지율 추이를 보면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선 안철수가 우세하고 ARS (자동응답설문조사)에선 김문수가 높게 나온다. 그런데 사람이 직접 묻는 전화면접은 여당 지지층의 응답률이 높고, 기계에 대고 응답하는 ARS는 야당 지지층 응답률이 높다. 권력 눈치 안 보고 자유로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ARS가 보다 현실을 반영한다고 본다. 따라서 단일화를 한다면 ARS에 기반한 공동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미래당에 제안할 것인데 그들이 받을지는 미지수다. 시점도 문제다. 단일화 파급력을 감안하면 적어도 지방선거날 1주일 전까지는 해야 한다”

미래당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안철수는 2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후보에게 많은 지지가 모이면 다른 후보는 깨끗이 양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위적 단일화는 안된다고만 해온 그간 입장에서 보면 의미있는 변화다. 참모들도 “승리를 위해선 단일화는 포기할 수 없는 카드”라며 타이밍을 재고 있다. 미래당 이태규 사무총장(비례)은 “선거운동이 개시되는 30일부터 사전투표일인 다음달 7일 사이에 단일화 모멘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단일화는 바닥 민심이 요동쳐야만 가능하다. 인위적으로 추진하면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하면 드루킹 스캔들은 영원히 묻히고 정권의 독주는 더 심해질 것이란 공감대가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 민심을 타고 보수·중도층이 연합해 전략적 투표를 하는 흐름이 조성되고 박원순 시장의 7년 ‘실정’이 쟁점화하면 단일화는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단일화가 선거 뒤 야권 재편과 맞물려있는 것도 양측의 샅바싸움이 치열한 이유다. 안철수의 측근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야권은 반드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1대1로 단일화 협상을 하면 안 된다. 어느 한쪽이 자발적으로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 미래당으로선 안철수의 우세가 갈수록 분명해질 것이니 그쪽으로 자연스레 단일화가 될 것으로 보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문수도 안철수도 단일화 가능성을 끝까지 배제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3등’에 대한 부담 탓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패배자라도 2등과 3등은 차이가 크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등을 하면 상대적 ‘선방’을 주장하며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3등을 하면 정계에서 퇴출당하고 그를 공천한 정당은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현재까지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크지 않다. 둘 다 자신이 상대방을 확실하게 따돌리고 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강조하는 것 자체가 ‘3등의 덫’을 경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선거전이 종반을 향해가면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커져 2등과 3등의 구분이 명확해지면 3등 주자로선 후보를 사퇴하고 상대방을 밀어주는 게 선거 뒤 입지에 유리하다. 때문에 양측은 언제든지 단일화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6.13 지방선거까지는 14일 남았다. 아직은 지켜볼 여지가 적지 않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