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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개혁 어떻게] 한국 - 일본 전문가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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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21일 일본학술진흥회의 오노 모도유키 이사장(오른쪽)과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가운데)이 중앙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교육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개혁 방안’을 주제로 좌담회를열었다.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좌담회는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왼쪽)이 사회를 맡았다. 김성룡 기자

일본학술진흥회의 오노 모도유키(小野元之) 이사장이 지난 20일 방한했다.

오노 이사장은 일본 대학의 연구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비 지원사업인 '21세기 COE(Center of Excellence)' 프로그램의 핵심 인물이다. 그가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교육인적자원부 주최로 이날 오후 열린 '두뇌한국(BK)21 사업 성과 분석 국제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심포지엄에는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도 참석해 산업계에서 평가하는 BK21 사업 성과에 대해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21일 임 회장과 오노 이사장을 본사 대회의실로 초청해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개혁방안'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좌담회의 사회는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이 맡았다.

▶오세정=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국제적인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오노=일본은 인적 기반 외에는 석유도, 철강도 없다. 21세기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세계를 위해 공헌하고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 수준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대학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임관=지식기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자원이다. 대학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 특히 전문가와 국가 지도자를 양성하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오세정=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의하면 대학교육 경쟁력에서 조사 대상 60개국 중 일본은 58위, 한국은 59위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대학들이 이처럼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와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는 개혁방안은 무엇인가.

▶임관=IMD 보고서의 평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 한국 대학은 역사가 짧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노력해 나가면 머지않아 세계 수준의 대학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야 국가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오노=IMD의 평가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후 일본에서는 대학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정책을 펴오다 보니, 성과가 우수한 대학을 더 지원해 주고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또 교수회 만능주의 때문에 총장이 소신껏 정책을 펼 수 없는 현상이 있어 왔다.

▶오세정=일본과 한국 모두 그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부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99년 시작된 한국의 BK21 사업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인 COE가 시행됐는데 그 성과를 짚어 주고 한국의 BK21 사업과 비교해 달라.

▶오노=일본의 COE 프로그램은 경쟁적인 환경을 대학에 도입해 총장의 리더십을 높이고 세계 30위 내에 들어가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는 단순히 순위만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총장의 강한 리더십 아래 각 대학이 자신의 특성을 살려 연구와 교육의 최첨단 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과거 모든 대학이 도쿄대를 모방하려는 평등주의 정책을 추진했다면, 지금은 각 대학을 특성화해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것이 BK21과 유사한 점이다.

▶임관=BK21 시행으로 많은 수의 박사.석사 학위를 배출했고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 수가 크게 증가하고 대학원의 질도 향상됐다. 산업계에서도 BK21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BK21 후속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오세정=한국과 일본 대학은 지배구조가 큰 문제다. 일본은 해결책으로 지난해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했는데 국립대 법인화는 왜 필요한지, 성과는 조만간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오노=국립대 법인화로 교직원이 더 이상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일본인이 아니어도 총장이나 부총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급여도 대학마다 차별적으로 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우수한 외국인을 초빙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총장의 리더십이 강화되는 등의 변화도 생기고 있다.

▶임관=한국에서도 일본 국립대의 법인화 성과를 지켜보고 신중하게 접근하되 출연기관처럼 법인화를 하는 것이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관이 발전하려면 투자위험감수(리스크테이킹, risk-taking)를 해야 한다. 대학이 투자위험감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오세정=대학 교육 혁신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도 있고, 정부가 촉진시켜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어떻게 보나.

▶임관=교육에 관한 한 급성장 과정에서 정책적인 착오가 있었다. 그걸 되돌려야 한다. 우선 대학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또 고등학교까지의 지원은 세계 수준이지만 대학 교육 지원은 미흡하다. 이를 반성해 정책상 필요한 것은 해야 한다. 교수들도 좋은 안을 만들어 공론화해야 한다. 산업계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오노=일본 정부는 규제 완화의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최대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도록 정부가 선도하는 수준이다. 예산 배정 등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오세정=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대학이 기르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은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대학에 요구할 사항은 무엇인가.

▶임관=기업과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약점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이다. 외국 대학에는 산학 연계 담당 부총장(Vice president investment)이라는 직책이 있다. 이들의 책임은 산업계와 커뮤니케이션해 어느 정도 지원할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부족하다.

▶오노=국립대 법인화가 이뤄지면서 일본에는 산학 연계 담당 부총장직이 신설됐다. 산학 교류는 10년 전보다 많이 활성화됐다. 법인화 이후 학내에 기업이 들어올 수 있게 됐다. 기업은 대학이 원하는 부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방향의 대화가 필요하다.

▶오세정=대학 교육을 놓고 기초 소양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과 전공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학 학부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임관=대학을 막 졸업한 사람들은 전공 과목을 더 공부했으면 하고 후회한다. 졸업한 뒤 5년쯤 지난 사람은 '그때 수학을 공부했으면 앞서갈 텐데'라고 생각한다. 15년이 지나면 '사회학을 배웠으면 좋았을 걸' 한다. 이렇게 스펙트럼이 달라지기 때문에 대학과 사회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열고 서로 협의해 바람직한 교육과정에 대한 길을 찾아야 한다.

▶오세정=일본은 기업이 대학을 설립, 운영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은 영리법인이 대학을 설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원활한 대학 운영을 위해 기업의 대학 설립은 필요한 것인가.

▶오노=기업에 따라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가 도요타공대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 같은 기업이 자사가 필요로 하는 수준 높은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을 운영하는 것에는 찬성이다.

▶임관=기업이 대학을 직접 운영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기업은 자기 본업인 이익 창출과 사회 공헌에 충실해야 한다. 또 대학은 대학의 본업인 교육과 연구 서비스에 충실하면 된다. 벤처기업을 많이 차리는 것으로 대학을 평가하거나 기업이 대학을 운영하는 것으로 평가받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세정=대학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한.일 대학 간 협력방안은 무엇이 있을 수 있나.

▶오노=한국도 아주 우수한 교육제도를 갖고 있고 일본과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 간 협의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내부적으로는 한.중.일 최첨단 연구 프로젝트를 발전시키자고 논의 중이다. 유럽 섹터, 미국 섹터에 이어 3국이 협력해 세계를 선도할 동아시아 핵심 프로젝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과거 두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을 많이 했다. 이를 사죄한 뒤 한.중.일 연구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살아온 민족들이어서 그런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임관=전적으로 동감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안도 한 가지가 있다. 미국.스위스.일본.한국 등이 참가한 IMS(Intelligent Manufacturing Systems)에서 논의되고 있는 GEM(Global Education in Manufacturing.생산기술교육과정 개발 프로젝트)이다.

앞으로 세계 제조업 중 70%가 아시아로 온다고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 석사급 커리큘럼을 개발해 일본과 한국이 협력해야 한다. 이번에 2단계 사업의 원장을 맡게 된 만큼 이와 관련해 일본과 열심히 협력하도록 노력해 보겠다.

진행=김남중 정책사회부 차장
정리=한애란.이충형 기자 <aeyan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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