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168조 중 60조는 회수 불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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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그룹이 41억원의 자금을 들여 로비해 550억원의 공적자금을 빼먹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공적자금 투입과 회수 과정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국내 금융회사의 부실 자산이 많아야 100조원이며 이를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공적자금은 64조원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예상액의 두 배를 훨씬 넘는 168조2000억원이다. 이번에 드러난 일부 기업의 공적자금 빼먹기도 그 이유 중 하나다.

◆ 공적자금 빼먹기 어떻게 했나=예금 대지급과 회사 청산 등으로 날린 공적자금은 어쩔 수 없지만 부채탕감이나 대주주의 재산 은닉 등으로 이뤄진 공적자금 빼먹기가 문제다. 현대차 그룹이 로비와 불법행위를 통해 기아차의 부실 계열사였던 ㈜위아와 아주금속공업 채무 2000억원 중 550억원을 탕감받은 것도 대표적 사례다.

이런 수법은 전에도 적발됐다. 2001년 11월 태창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이 회사의 부실채권을 은행에서 사들여 공개매각에 부치자 제3자를 내세워 채권을 헐값에 되사들이는 수법을 썼다. 캠코가 146억원의 대출금을 공개매각에 부치자 태창은 3%의 수수료를 주겠다며 A사를 내세워 43억원에 대출채권을 사들였다. 제3의 회사를 앞세우는 불법적 방법으로 146억원의 채권을 43억원에 사 103억원의 부채를 탕감받은 것이다. 법원은 태창의 대표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 공적자금 조성과 운용은=공적자금은 초기에 주로 캠코나 예금보험공사 등이 3~7년 만기의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민간에서 조달했다. 이렇게 발행된 자금은 102조1000억원에 달했지만 재원이 부족하자 정부는 정부 보유 주식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모라자 회수자금을 재투입한 공적자금도 41조9000억원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한 뒤에도 대우채권 부실화에 이어 SK글로벌 사태, 카드채 사태 등이 줄줄이 터지면서 금융 부실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만 생기면 정부에 손을 내밀었고 정부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공적자금을 척척 투입했다. 공적자금은 대부분 채권발행을 통해 민간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회수 자금으로 만기 상환을 못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막아줘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우리금융 매각 등을 통해 32조원 정도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회수할 수 있지만, 전체 투입액의 40%가량인 60조원은 영영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공적자금을 넣은 회사 중 이미 청산돼 없어졌거나, 제일은행처럼 싼값에 서둘러 매각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현대차 그룹처럼 불법으로 빼돌려진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뒤늦게 부실기업 대주주들의 재산을 추적하거나 압류하고 있지만 이미 친인척 명의로 재산을 도피시킨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 금융 전문가는 "공적자금을 많이 넣은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 것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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