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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깨질까 두려웠나 … 김정은, 문 대통령에 ‘번개 회담’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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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이전 ‘최고 존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된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남북의 실무진이 통화를 통해 협의하는 것보다 직접 (정상들끼리)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 나누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전격적으로 회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며 "친구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왜 먼저 회담 요청했나 #김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 #문 대통령 “친구간처럼 이뤄진 회담” #“김, 공언했던 경제목표 차질 우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승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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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은 김 위원장이 강원도 문천과 원산 지역을 현지지도한 뒤 평양에 복귀한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 부적절하다는 내용의 서한을 공개(한국 시간 24일 밤)한 다음날이다. 북한은 이날 오전 김계관 제1부상을 내세워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며 유연한 입장을 내놓았다. 오후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열자는 김정은의 ‘번개 회담’ 제안이 청와대에 전달됐다. 이는 지난해까지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던 행태와 다르다. 전직 고위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해 왔다”며 “이전에는 제안을 내놓기 위한 검토 과정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대화 타이밍을 놓치곤 했는데 최근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북한의 모습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김정은의 스타일을 지적했다.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 신중한 검토를 선호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은 뭔가 다르다는 게 김정은을 직·간접적으로 접했던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정부 고위 인사는 “지난 3월 방북했던 특사단의 뒷얘기를 들어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참모들의 보수적인 의견을 어느 정도 의식했던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결심하면 그대로 가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전격적인 남북 정상회담 제안은 미국을 상대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겠다는 김정은식 승부수 아니냐는 얘기다.

통일각

통일각

김정은이 이미 북·미 담판을 내부적으로 ‘국정 목표’로 제시한 만큼 이제 와서 뒤로 물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은 올 들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승리해 체제 보장을 이루겠다”고도 공언했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은 그 결과와는 별도로 김정은이 북한 내부적으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종식하는 분수령으로 예고한 만큼 이제는 성사시켜야 하는 입장이라는 관측이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대미 관계 개선과 이에 따른 대북제재 해제를 전제로 비핵화라는 자신들의 패를 공개했다”며 “따라서 이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전략 수정을 해야 하는 데다 리더십 위기로 번질 가능성까지 우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하게 중국을 비토하면서 북한이 당장 손을 잡을 수 있는 대상이 한국뿐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 입장에선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당장 가동 가능한 외교 라인이 남북 라인이었다는 취지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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