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기업] 집단지성 활용,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지원…'챌린지형 R&D' 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국내외 기술개발(이하 R&D) 지원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경진대회 형식의 국가 R&D 지원사업들이 눈에 띈다. 이런 경진대회 형태의 R&D는 해외에서는 이미 활성화돼 있다.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그랜드 챌린지’가 대표적인 해외 사례다.

서울산업진흥원(SBA) #과정 공개해 아이디어 보완 #결선엔 시민 평가단도 참여 #해외 진출 네트워크도 구축

 단기간에 밀어내기식 예산 집행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있었던 R&D 지원 프로세스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 모집 후 과제 선정평가를 거쳐 바로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예전의 모델이라면 지금은 과제 선정 절차를 여러 단계로 구분해 필요성, 기대효과, 파급력 등을 장기간에 걸쳐 검토하고 기술개발 과제 내용이 발전·숙성되도록 지원하고 있는 추세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R&D 지원사업 중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서울혁신챌린지’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표방하는 사업으로 눈여겨볼 만한 사업 중 하나다. 서울혁신챌린지는 기존 R&D사업이 과제계획서만을 바탕으로 비공개 평가를 통해 지원과제를 선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디어 숙성과 내실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팀빌딩 과정, 프로토타입 개발 과정 등의 R&D기획 단계에서 사업화에 이르는 전주기적 지원체계를 통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과정에서 참가팀의 아이디어가 보완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사업 첫 해인 지난해에는 약 1년 동안 아이디어·팀빌딩-예선평가-시제품 제작-결선평가의 과정을 거쳐 최종 16개 팀을 선발해 팀당 최대 2억원의 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만성심장질환자의 건강 상태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사망률을 줄이는 헬스케어 기술(휴이노), 상·하수도관 파손감지 시스템을 개발해 물 손실 및 싱크홀을 예방하는 기술(오토시맨틱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서울혁신챌린지는 결선평가 과정에 일반 시민평가단을 참여시켜 개발될 기술이 시민 생활, 나아가 서울의 발전에 미칠 기대효과와 파급력을 공개적으로 평가해 최종과제를 선정하는 등 시민이 참여할 기회도 제공했다. 이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일방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R&D 지원의 최종 수혜자인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술개발 지원을 통해 연구개발비 집행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올해 3월에는 전년도 서울혁신챌린지 수상기업 4개 팀이 서울혁신챌린지의 공식 파트너사(엔비디아 등)가 주최하는 세계적인 인공지능 행사에 초청받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술 홍보의 기회를 얻었고 기술 및 장비 지원의 혜택도 받게 됐다.

 이처럼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는 국내의 경진대회형 R&D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인공지능·블록체인 등의 혁신기술개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미 선도적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 지원 및 해외 진출 교두보 확보가 중요한 실정이다.

  기술 개발에는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매출을 발생시키는 기술사업화나 글로벌 진출 지원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R&D 지원 규모는 세계 6위를 차지하나 상업화는 세계 43위로 부진한 실정임을 봐도 알 수 있다.

 R&D 기획 및 과제 선정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선도 기관 혹은 기업의 참여를 확대시켜 가능성 있는 기술을 선발, 예비창업자 및 스타트업들에게 기술개발 플랫폼을 연계 지원하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 기술개발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우수한 기술을 통해 해외 진출까지 성공할 수 있는 기반과 네트워크 제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서울혁신챌린지를운영하고 있는 서울산업진흥원(SBA) 서울R&D지원센터는 “글로벌 수준의 기술 개발 및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글로벌 AI컴퓨팅 및 SW솔루션 대기업들과의 업무 협력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초기 단계인 경진대회형 R&D 지원이 서울 더 나아가 글로벌 도시문제 등의 해결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더 많은 기회와 지원 확대가 기대된다.

김승수 객원기자 kim.seungs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