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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강변제」서「달맞이」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화합과 전진」이라는 서울올림픽의 이념이 한편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대서사시로 펼쳐진다.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SLOOC)가 2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최종 확정한 개·폐회식은 말 그대로 올림픽을 열고 닫는 대목.
따라서 개·폐회식은 모든 잔치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의식을 겸한 축제일뿐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문화·예술 및 과학분야에 이르기까지 잔치를 준비한 주인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얼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축제라 해서 단순히 보고 즐기는 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닌, 40억 인류가 우리와 함께 느끼고 생각하는 감동의 장으로 승화하기 외해서는 「강렬하고 일관된 주제」를 지녀야 하고 우리「전통문화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 숨쉬어야 하며, 나아가 인류가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전위적인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은 대회이념인 「화합과 전진」을 극적으로 승화한 「벽을 넘어서」를 주제로 삼고 여기에 고유성과 충격성을 가미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주제표현을 위해 서울올림픽 개회식은 벽안의 공간인 메인 스타디움에서만 벌어졌던 종전방식에서 과감히 탈피, 첫 머리를 시원하게 뚫린 한강에서 펼쳐지는 「강변제」로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변제」의 수평적이고 유동적인 움직익은 「길놀이」로 발전되어 땅(지)에서 인간(인)으로 향하게 되고 「길놀이」의 행렬이 주 경기장에 이르게 되면 「해맞이」와 「성화대를 응용한 세계수무」라는 수직적 이미지로 바뀜으로써 하늘(천)과 이어진다. 천·지·인의 융합을 이상적인 삶으로 믿어왔던 우리 선조들의 삼재사상을 자연스럽게 표출해내는 것이다.
작품 전체를 인류가 탄생되는 시원의 황금시대(해맞이)로부터 갈등과 혼돈의 시련(혼돈), 그리고 이를 극복하여(벽을 넘어서)마침내 대화합의 내일로 향하게되는 과거·현재·미래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인류의 대서사시는 로보트로 상징되는 외계인(한마당)까지 축복하는 것(로보트 80개가 나와 군무)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새로운 기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길놀이」에 등장하는 어가행렬과 한국고유 북들의 행진을 비롯해 아이들의 제기차기와 고놀이, 낙하산을 이용하여 한국의 잔칫날 분위기를 자아내는 「차일춤」등은 한국문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작품들로 세계인의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텅 빈 운동장을 아이 한 명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장면(정적)을 연출, 동양특유의 여백과 침묵의 미학을 표현하게 되며 개회식은 「해맞이」, 폐회식은 「달맞이」를 각각 테마로 삼은 것도 우리 고유의 사상을 함축, 표현한 것들이다.
이외에·신비스런 세계수의 등장이나 음계가 다른 버들피리를 관객들에게 나눠줘 청각적인 하모니를 자아내고 스테레오 이어폰을 사용, 모든 관객이 8개 국어 동시통역과 해설은 물론 현장의 음악적 효과를 1백%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충격성을 노린 것들도 색다른 시도다.
따라서 첨단과학이 예술과 손을 잡는 전위적인 충격성이 작품 곳곳에 내재돼 있어 공연 자체가 재미있고 신바람이 나도록 구성돼 있다.
다만 우리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고유의상이 과다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한복일색」이라는 비판을 들을 여지가 있다는 점이 다소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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