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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싱가포르 회담 취소 이면, 볼턴 “양보할거면 아예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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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에서 기자회견 뒤 악수하려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하는 날까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그들의 의무를 다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에서 기자회견 뒤 악수하려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하는 날까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그들의 의무를 다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이렇게 양보할 거면 정상회담은 아예 안 하는 게 낫다.”(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일단 비핵화라는 틀 속에 북한을 넣어야만 계속 압박이 가능하다.”(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볼턴과 폼페이오 두 사람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각종 대책회의에서 이런 얘기를 반복하며 맞섰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를 결정한 이면에 두 사람의 정면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의 경우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북한이 수용하게 만들고 나면 북한이 “우리는 핵보유국” “핵을 쓰겠다” 등의 협박 자체를 못하게 억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깔고 회담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 해법 놓고 폼페이오와 정면 충돌 #폼페이오 “일단 비핵화 틀부터 구축 #김정은, 비핵화 대가 경제지원 요구” #북, 강경파만 골라 공격 ‘갈라치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4일 “미국이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면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하겠다”고 한 것이나, 일주일 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회담 재고 카드를 내놓은 건 모두 ‘리비아식(핵 능력을 전면 제거해 미국으로 반출) 핵 폐기’를 앞세운 볼턴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협상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한 공격은 없다. 즉 트럼프-폼페이오와 펜스-볼턴을 갈라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폼페이오와 볼턴은 완전한 비핵화(CVID)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그간 여러 차례 충돌해 왔다. 같은 매파이면서도 부딪치게 된 건 애초에 세계관과 야심이 다르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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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라이트 브루킹스연구소 미국·유럽센터 국장은 폴리티코 기고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장·국무장관까지 오른 57세 폼페이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에게 북핵 담판은 반드시 성공으로 끝나야 할 과업이다”고 썼다. 반면에 볼턴은 “미국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다자주의 국제법 체제와 맞서 싸우는” 전사이자 원리주의자다. 자신의 향후 정치적 장래보다 소신을 관철하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일이다. 과거 비핵화 협상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적대감도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턴·펜스에 대한 북한의 거친 공세엔 그들의 내부 사정도 한몫한다. 전통적으로 북한의 대미 외교는 외무성 소관이었고 뉴욕채널이 담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뉴욕채널은 뒤로 밀려났고 미국에서도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퇴임 이후 국무부의 대북 라인이 와해됐다. 그 공백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폼페이오 라인이 메우면서 북·미 회담 국면이 전개됐다. 즉 김영철에게 대미 외교 주도권을 뺏긴 외무성이 정상회담의 실무협상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기선잡기용 강공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폼페이오는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모델은 (리비아 모델이 아니라) ‘신속한 비핵화(Rapid Denuclearization)’”라고 밝히고, “두 지도자(트럼프와 김정은)가 근본적 (체제) 보장에 대한 대가로 완전한 비핵화를 하는 문제에 대해 합의하면 종착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는 좋은 날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주 전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그는 미국의 비핵화 목표를 수용했을 때의 대가로 미국 민간 기업들의 지식·노하우를 통한 기여나 외국 원조 등을 받고 싶다고 분명히 했다”며 “나는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매우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도 했다.

"북, 탄도미사일 발사 안 하면 회담 되살릴 기회있어" 

하지만 미국 부통령을 비난한데다 '핵 대 핵 대결'을 경고한 최선희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의 한계를 넘겨 싱가포르 회담을 무산시켰다. 앞으로 관건은 김정은 위원장의 두 가지 선택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 서한 말미에 제안한 대로 직접 회담 재개 의사를 밝히느냐, 아니면 동결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해 지난해와 같은 군사 대결 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냐다.

한국계 미국인 억류자 세 명 석방과 풍계리 핵실험장 폭발 폐쇄까지 싱가포르 회담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했던 김 위원장으로선 한두 달 숙고의 시간을 가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미사일과 핵 실험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대화로 돌아갈 충분히 많은 방법들이 있다"며 "양국이 회담을 정당화할 충분한 상호 이해를 넓히기 위해 세간의 주목을 피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폼페이오-김영철 핫라인 채널과 남북 정상간 핫라인이 복원돼 파국을 피하는 물밑 외교가 성과를 내느냐도 중요하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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