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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아이 러브 아프리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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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각종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지역은 냉전시기 소련과 긴밀했던 것을 제외하곤 근대 이후 주로 유럽과 미국의 영향권에 속했다. 하지만 최근 자원확보에 나선 중국의 공략이 본격화되자 미국도 이에 질세라 투자 확대를 약속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이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미.중이 치열한 선심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아프리카 국가들만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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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중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교역규모는 398억 달러로 2004년에 비해 36%나 급증했다. 2001년과 비교하면 거의 네 배로 늘었다. 교역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은 원유는 물론 광물자원.목재 등 거의 모든 원자재에 손을 뻗치고 있다. 짐바브웨의 백금과 잠비아의 구리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중국은 기계류와 전자제품을 현지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제품보다 싼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도 600여 개에 이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아프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확보하는 대가로 저개발 국가들에 성장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중국에 아프리카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는 지난해 7월 베이징을 국빈 방문한 뒤 "중국은 조만간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라며 "아프리카는 앞으로 해가 지는 서쪽(서방국가를 지칭) 대신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계심 높아가는 미국=중국의 공세가 거세지자 미국도 견제에 적극 나섰다. 미 외교협회(CFR)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아프리카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와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앞세워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수단.짐바브웨 등 불량국가(rouge state)에도 군사무기를 공급하는 등 무차별적인 지원책을 펴고 있다"고 중국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미 행정부 전직 고위관료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작성했다. 앤서니 레이크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관료들도 대거 참여했다. 중국의 급성장에 미국이 초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투자 확대라는 당근도 내놓고 있다. 로드니 엘리스 상원의원(텍사스.민주)은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은 아프리카의 산업화를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100억 달러씩 모두 1000억 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아프리카산 석유 수입 비중도 현재 15%에서 2015년에는 2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박신홍 기자

왜 아프리카에 눈 돌리나

새로운 원유 공급선 확보하고

유엔 주도권 위한 '표밭' 관리

미국과 중국의 아프리카 쟁탈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확보가 첫째 요인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1122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 전 세계 확인 매장량 1조1886억 배럴의 9.4%에 해당한다. 게다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매장자원이 곳곳에 널려 있어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중동지역에 버금가는 양의 석유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전체 원유수입량의 약 30%를 아프리카에서 들여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1.8배나 되는 규모다. 중국은 매년 10% 안팎의 성장률 속에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고 있지만 기름이 없으면 공장은 굴러갈 수 없다. '에너지 블랙홀' 중국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미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중동지역 정세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어 새로운 원유 공급선의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알래스카 개발과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의 심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미국이 아프리카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1세기 국제사회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의 측면도 강하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10년 넘게 세계 최강자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 의회와 학계에서는 중국 견제론을 넘어 '중국 위협론'까지 들먹이는 실정이다.

미국이 일본과 유착관계를 심화하고 인도와 핵협정을 맺은 것도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행보다. 중국도 이에 맞서 인도와 앙숙인 파키스탄에 공을 들이고 러시아와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미.일 동맹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전선이 아프리카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서도 아프리카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표밭'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국가의 수다. 191개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는 53개국으로 전체의 27.7%나 된다. 양국이 눈독을 들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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