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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소년법 폐지 주장, 저출산 걱정하며 있는 아이 버리자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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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05면

전문가 5명의 진단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흥국사에서 열린 ‘명예보호관찰관과 함께하는 보호관찰 청소년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청소년 10명이 정목 스님으로부터 참선 수행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고양준법지원센터]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흥국사에서 열린 ‘명예보호관찰관과 함께하는 보호관찰 청소년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청소년 10명이 정목 스님으로부터 참선 수행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고양준법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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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회복 지원 줄면 득보다 실 #“엄벌에 앞서 환경 바꿔줄 필요” #“어릴수록 재범 여지, 집중 지원을” #“학업·재능계발 기회 더 많아져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소년법 개정 및 폐지 요구 청원 건수(18일 기준)다. 지난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은 해가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40만 명이 동의한 소년법 폐지 청원에 대해 지난해 9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지만 이후에도 소년범죄자를 성인과 똑같이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여론에 대해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과 매일 부대끼는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중앙SUNDAY는 고기영(48) 고양준법지원센터 책임관, 김미애(49) 변호사, 송현건(38) 울산중부서 여성청소년과장, 오현아(48) 법무부 소년과 분류계장, 길창호(46) 부산국제금융고 생활지도부장 등 5명을 직접 만나 들었다.

처벌받은 비행 청소년들의 재비행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는 보호관찰 업무에 20년간 몸담아 온 고기영 책임관은 “엄벌에 앞서 비행을 유발하는 환경적 원인을 어른들이 나서 차단해 주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고기영, 김미애, 송현건, 오현아, 길창호.

왼쪽부터 고기영, 김미애, 송현건, 오현아, 길창호.

“2009년 강도상해죄를 함께 저질러 보호관찰을 받게 된 두 학생을 담당했다. 보호관찰소에 마련된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해 공부에 재미를 붙인 진성이(가명)는 1년 뒤 보호관찰을 더 받고 싶다고 판사님께 편지를 썼다. 반면에 민수(가명)는 다른 범죄를 저질러 같은 날 법원에 구인됐다. 진성이는 이후 반에서 1등도 하고 대학 진학에도 성공했다. 똑같은 범죄로 처벌받았는데 왜 극과 극의 길로 갔을까. 진성이는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가 헌신을 다했지만 밤에 술집을 했던 민수 어머니는 여력이 없었다. 어머니 외에 주변의 다른 조력자를 찾아줄 시스템이 없었다.”

소년사건 국선보조인으로 수백 명의 소년범을 변론해 온 김미애 변호사도 소년법 폐지 여론을 타고 청소년 회복 지원에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컸다.

“소년범죄가 집단화·흉포화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요즘엔 SNS 등의 발달로 적나라한 정보 전달에 따라 공분이 커졌을 뿐이다. 아이를 성인과 똑같이 처벌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저출산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있는 아이들도 버리자고 하면 되겠나. 저출산 대책에 쏟아붓는 막대한 예산의 일부라도 청소년 회복에 투입한다면 사회는 훨씬 빠르게 건강해질 것이다. 소년법을 폐지해 인격 형성 단계인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뺏으면 오히려 사회는 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엄벌을 대신해 소년들의 재범을 줄이고 이들에게 사회와의 건강한 고리를 찾아줄 대안은 무엇일까. 소년범 사건을 다수 수사해 온 송현건 과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돌봄을 강조했다.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모든 것을 다 하려 해선 안 된다. 1년 내내 아무 사건도 없는 학교, 그리고 놔둬도 잘 하는 애들은 선생님과 교육청에 넘기면 된다. SPO는 그보다 비행에 자주 노출되는 청소년들을 집중적으로 돌볼 필요가 있다. 환경적으로 곤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지지해 주고 친밀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비행과 처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나이 어린 비행 청소년들에겐 보다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오현아 계장은 “어리면 어릴수록 회복 가능성도 높지만 재범 가능성도 높다. 또래 집단 영향을 많이 받고 유혹을 견딜 의지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 마땅히 머무를 만한 데가 없어 또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소년원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학생들로 구성된 특별반을 맡고 있는 길창호 부장은 “우리가 너무 일찍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흔히들 사춘기를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기라고 한다. 비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아이는 언제가는 철이 들고 미래를 설계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받아주는 학교가 없다. 학교 입장에선 도려내고 싶은 싹인 셈이다. 몇 번 거절당하다 보면 어렵게 학업 의지를 세운 아이들이 자포자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선 학업과 재능 계발의 기회를 주는 기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SUNDAY는 ‘호통판사’ 천종호(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015년 1월~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 보호 사건을 전수 분석했다.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첫 소년부 판사를 맡았을 때부터 올해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를 떠날 때까지 만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말투, 특징을 세세하게 기록한 메모의 뒷부분이다. 종이로만 남아 있는 메모를 모두 정량화해 분석했다. 중복되고 누락된 정보를 제외하니 1872명이었다. 이들의 죄명과 재범 여부, 가정환경과 본인 특성 등이 분석의 초점이다. 천 판사의 메모에는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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