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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 시진핑 만난 뒤 강경 모드” 중국 배후 의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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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06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나토 총장과의 회동 중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나토 총장과의 회동 중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 모드로 선회한 북한에 강온 양동작전을 구사했다. 북한엔 비핵화에 합의하면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할 수 있지만,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 모델’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최근 북한의 입장 변화와 관련해 중국 배후설을 제기하면서 대중국 경고 메시지까지 날렸다.

북 기류 변화에 강온 양동작전 #비핵화에 합의하면 ‘한국 모델’ #김정은 통치하며 번영 이룰 것 #합의 안하면 ‘완벽한 초토화’ #리비아 모델 적용할 뜻 시사 #북·중 밀착에 경고 메시지도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폐기 방안으로 밝혔던 ‘리비아 모델’을 당장 북한에 적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종의 북한 달래기 발언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에 의해) 언급된 ‘리비아 모델’은 (북한과는) 매우 다른 모델”이라고 잘라 말했다. ‘선 핵 폐기, 후 보상’을 골자로 하는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을 의식한 발언이다. 발언 말미에는 볼턴 보좌관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건 문제가 생겼을 때(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를 가정한 상황”이라고 북한의 우려를 의식한 해명까지 했다.

이어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경우 북한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기꺼이 할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김정은)도 기꺼이 많은 것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 보장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리비아를 초토화(decimation)했다. 카다피를 지키겠다는 합의가 없었다. 우리는 가서 그를 없앴다. 우리는 이라크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리비아 모델이 발생하겠지만, 합의한다면 김정은은 매우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비아, 이라크는 미국과 어떤 ‘합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토화’됐지만,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에 ‘합의’하면 체제 보장도 약속하는 전혀 다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인 것이다.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 등을 통해 공개 비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UPI=연합뉴스]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 등을 통해 공개 비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UPI=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독재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계속 권좌에 남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경제 지원과 관련해선 처음으로 ‘일종의 한국 모델(A South Korean Model)’이란 신조어를 꺼내들었다. 전날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언급한 ‘트럼프 모델’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산업적 측면에서 (북한의 경제 번영은) ‘일종의 한국 모델’이 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카다피와는 달리) 그의 나라에 남아 나라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매우 잘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근면한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을 예로 들면서 북한도 비핵화에 합의만 하면 미국이 강력하게 김정은 체제를 보호하고,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지원도 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거나 회담에서 비핵화를 합의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경고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며 “그 회담이 열린다면 열리는 것이고, 열리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열린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만약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그 모델(리비아 모델)이 발생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러면서 ‘완벽한 초토화(total decimation)’란 표현을 썼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북 군사적 옵션 사용 등을 포함한 말이다.

이와 관련해 비확산 전문가인 미국 무기통제협회 킹스턴 레이프는 “북한 입장에선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고, 나아가 북한 내 강경론자들이 ‘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중국 배후론도 거론했다. 북한의 강경 모드 선회 배후에 중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근 태도 변화가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이어 “나는 그들(북한)이 중국과 만났을 때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시 주석과 두 번째 회담(5월 7~8일 2차 방중)을 한 뒤로 (입장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비핵화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대미 강경 대응을 취하도록 ‘조종’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류허(劉鶴) 부총리 등 중국 무역대표단이 워싱턴DC를 방문해 제2차 무역 담판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왔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18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북한의 협상력을 강화해 주는 ‘믿을 구석’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에 대한 트럼프발 경고의 메시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최근 미 행정부 안팎에선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중국이 대북 지원 등을 명분으로 북한에 강경 태도를 주문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 대목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임주리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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