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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 8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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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속담에 『건들 8월』이라고 했다. 건들거리는 바람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달이라는 뜻이다. 올 8월은 정말 그럴것도 같다.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둥둥 떠있고, 온세상이 술렁거릴테니 말이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더위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우리의 8월은 너무 덥다. 시인 가람(이병기)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더위의 풍경을 실감나게 읊고 있다. 바람 한점 없는 좁고낮은 집, 기나긴 해, 좇고 좇아도 날아드는 파리떼, 빈 항아리에 떠도는 장구벌레들, 얄프시 잠이 들려면 앵앵거리는 모기들…. 모두가 상상만 해도 짜증과 진땀이 함께 나는 얘기들이다.
가람은 그런 더위를 그리면서도 호미들고 김매는 농부를 생각하고 있다. 『…도리어 일없는 이몸, 부끄러움이어라.』 우리의 선비들은 더위에 지치기보다는 맞서서 싸워 이기는 경우를 생각한다.
중국의 문필가 김성탄은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33가지나 소개한 글을 남겨 놓았다. 17기, 아득한 옛날의 얘기지만 그중에는 지금도 가슴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땡볕속 하늘엔 나는 새도 없는데 별안간 검은 구름이 밀려와 소나기가 쏟아질 때, 가난한 선비집에 친구가 놀러와 부인은 엉겹결에 금비녀를 빼어 그 값으로 술을 사다 대접할 때, 책 읽는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 오래된 차용증서를 미련없이 불질러 버릴 때, 한달이나 지척거리던 장마가 끝나고 창밖엔 실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쬘 때, 칼로 잘익은 수박을 탈때, 방에 들어온 말벌을 내좇을때…. 지금 우리주위엔 이런 여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8월은 한결 더위를 잊게하는 비장함이 있다. 『팔월의 강이 손뼉 친다/팔월의 강이 몸부림친다…/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 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강은, 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박두진)
그 팔월은 우리에게 광복을 가져다 주었고 말과 생각과 행동을 되찾아주었다. 어느덧 그런 팔월을 맞은지 반세기에 다가가고, 나라를 세운지도 꼭 40년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팔월을 보내면서 해마다 한숨과 눈물을 먼저 생각했고, 정말 우리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되찾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했다.
올해도 그 팔월을 다시 맞으며 이제 팔월은 정말 광복의 팔월다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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