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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주의 의보」는 불합리|이광찬<원광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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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급성장하는 우리 나라 상황에서 「조합주의」 의료보험은 사회보험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제도다.
조합은 사회보험이 도입되기 전의 산업화초기에 「공제조합」으로 탄생돼 자육걱으로 상부상조하는 조직체였다. 그러나 도시화·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이것으로는 사회보장이 불가능해 전국민적 연대책임에 기초하여 재분배원리를 중시하는 강제가입의 공적인 사회보험제도가 생성, 발전해왔다.
그래서 초기에 내부적인 특수 요인들로 인해서 분립적 기금체제를 잘못 도입한 소수국가 외에는 대다수나라가 통합적 보험체제를 확립했다. 독일·일본 등 소수나라도 계속 통합적 요소를 가미해 오고 있지만 사회제도로 굳어져 각종 이해집단이 형성된 탓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제도는 비효율성·비형평성·비효과성이 크지만 그 밖의 사회·경제정책으로 평등한 사회기반을 이루고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에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조합」은 조합원의 공동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율적인 협동조합을 말하는 것이므로 의료보험 「조합주의」는 사회보험원리에 반하는 허구다. 더구나 현 「조합자율주의」는 관권에 의해서 강제적인 단위조합들의 구성, 강제가입, 고봉급 조합대표이사 등의 낙하산식 임면, 사업내용과 방향 등의 규제가 행해지고 있어서 그 실상은 일부 관료와 보험관리자 등의 권위주의 및 사적이익 보장체제에 지나지 않으며 어려운 계층의 실질적 의료보장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인상이 짙다.
통합체제에 대한 논의는 백방으로 봉쇄 당해 왔으나, 요즈음 민주화추세와 더불어 다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조합주의」의 제일의 논거는 보험재정을 절약하고 「정부재정중립」으로 국고지원을 가능한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직장조합은 4, 5년간 쓸 수 있는 잉여기금이 적립되어 있는 반면, 벌써 농촌조합에는 보험료 국고지원을 50%나 하게 되었는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또 89년에 실시할 도시자영자조합 등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조합」 개념의 「알뜰 살림」이란 터무니없는 소리다. 가난한 계층에게는 소득 외에 재산과 가족수 등에 따라 불공평한 「보험료」를 짜내면서 진료기관·진료권을 한정하고 열등한 의료서비스를 하거나 각 조합별 보험료 인상, 환자 본인 부담분 인상, 열악한 의료자원 유지, 의도적 진료억제…등 의료서비스 접근도를 낮추고 제한함으로써 이들 계층을 더욱 핍박케 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결과 저소득 피보험자들과 그 가족들의 질병예방 및 조기치료를 가로막게 되어 병을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게 만든다.
전국민적인 통합체제에서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자영자와 피용자, 도시와 농촌, 그리고 직종 및 지역간의 부담과 급여의 합리적인 조정·관리가 가능하게되어 저소득근로자·농어민·영세자영자 등 어려운 계층의 현재와 같은 불이익이 해결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수가의 일원화, 의료자원의 적정배분, 의료전달체계, 의약분업 등 여러 관련제도의 개선을 신속히 달성할 수 있으므로 더욱 유리하다.
의료보험에 있어서의 소득재분배는 연금보험 등과는 달라서 모든 국민이 소득능력에 따라서 직역이나 지역 등 이질성에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공정한 부담을 하고, 필요할 때는 누구에게나 의료서비스 접근도를 균등하게 보장해주는 것이다.
즉 의료급여는 「타먹는」 개념이 아니며 발병시에 큰 부담으로 인한 생활곤란을 막아주는 완화책이지, 아픈 고통·시간손해…등 까지 완전히 보상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높은 환자일부 부담제도 등을 고려하면 더욱 더 「타먹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원치 않는 질병·사고가 생기면 의료급여를 받아서 그 갑작스런 큰 곤란을 완화하기 위해서 국민의보기금에 「사회적 기여금」(사보험의 「보험료」가 아님)을 능력에 맞도록 공정하게 납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여금을 계속 내면서도 가능하면 온 가족이 건강해서 병원에 안 가는 것이 「못 타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득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일생동안 언제나 질병사고가 생길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차별 없이 균등한 의료를 보장받으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임금 여공이거나 농민 또는 고소득자이든 간에 누구나 사회적으로 공정한 적정 기여금을 내고 있다면 가능한 한 건강하여 의료급여를 안 받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득이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혹 발병하면 경제적 고통 없이 차별 없는 의료급여를 받고, 또 의료보험은 전 생애 정책인 때문에 후에 결혼하여 피부양자로서 급여만 받기도 하고, 더 훗날 노경에는 만성질환으로 기여금은 안내면서 의료급여만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타먹는」 개념으로 오도하여 「이 계층 조합 돈이 저 계층 조합으로 간다」는 식의 강변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질병사고라는 사회적 위험을 국민연대 책임으로 해결하고 남북분단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려 국민분열만 조장하고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조속한 통합체제의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만이 최고의 효율성·효과성 및 형평성을 갖는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고 또 기타 사회보장의 달성도 가능케 해준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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