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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 '암호화폐 유령거래' 의심하는 검찰…사기죄 성립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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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 사무실에 지난 10일 검찰 수사관 10여명이 들이닥쳤다. 실제론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매매를 한 뒤 장부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속였다는 혐의에 따른 압수수색이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장대정)는 이틀간 서울 강남구의 업비트 본사에서 전산 시스템 기록과 회계 장부 등을 확보해 분석중이다.

사기 혐의로 이틀간 본사 압수수색 #검찰 “화폐 없이 거래, 장부위조” #손해 입증 곤란해 처벌 어려워 #“투자자 보호 위한 가이드라인 필요”

업비트에 대한 강제수사는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암호화폐를 사실상 도박으로 규정하고, 거래소 전면폐지 등 규제법안을 예고한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검찰은 업비트에 사기 및 사(私)전자기록 위작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거래소가 보유하지 않은 암호화폐를 고객들에게 매도해 장부에 기록하는 행위 등은 전자기록을 위조하는 것인데다 해당 매매에 관여한 고객들에 대한 사기라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업비트는 강제수사에 대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입장이다. 업비트는 “지난해 10월 개소 이후 단 한 차례도 실제 보유하고 있지 않은 암호화폐를 매매한 적이 없고, 고객들의 암호화폐 구입대금을 빼돌린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암호화폐 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킨 뒤 거래소 내부 원장에 기재된 코인과 실제 거래된 코인 사이에 차액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까지 거쳤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만일 업비트가 장부상 ‘유령거래’를 한 정황이 발견돼도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그로 인한 피해자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업비트에서 암호화폐를 매수한 고객이 이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다. 사기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손해의 발생’을 검찰이 입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장부거래가 발생했다고 해도 나중에 고객이 언제든 암호화폐를 현금화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면 고객 입장에선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이고 사기죄의 성립 여부에도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소가 시세를 조종하기 위해 장부거래를 한 경우에도 이 거래를 통해 거래차익을 본 고객이 있고 손실을 본 고객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손해를 끼쳤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같은 논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암호화폐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처벌 위주의 접근만 계속한다면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과 자금세탁 등 암호화폐 거래의 부작용이 계속될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암호화폐는 통화도, 화폐도, 금융통화상품도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암호화폐의 성격과 정의조차 규정하지 않은 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암호화폐를 단순히 투기나 도박으로 규정하고 시장을 방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거래소 관리를 위한 정책들을 입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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