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진정한 사과"…'태움 의혹' 간호사 어머니의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 박 간호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촛불램프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 박 간호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촛불램프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딸이 떠난 지 85일 만이었다.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어머니 A씨(49)가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2월 박 씨 사고 직후 '태움'(괴롭히며 교육하는 문화)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언론의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그동안 유족 입장은 그의 자매들이 맡아 말해왔다.

10일 A씨가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사업장을 찾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금도 선욱이가 살아 있는 듯하다”며 운을 뗐다.

딸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 게 그가 그동안 고통을 참아내는 방법이었다. “큰 충격을 받으니 저 스스로 선욱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더라고요.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 거예요. 하지만 문득 아이 생각이 나면 제 가슴을 멍이 들 정도로 내리쳤어요.”

그는 “얼마 전 동사무소에서 딸의 서류를 정리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사망신고를 안 하면 과태료가 나온다고 했다”며 “‘나한테 그런 말 마라’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아직 동사무소를 갈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선욱이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추모집회·대책위원회 등에 가보니 주변의 많은 분이 저만큼 슬퍼해 주시고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제 딸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시는 분들을 보며 저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딸은 “항상 밝고 포부가 컸던 아이”였다. 박씨는 재수를 해서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중국어 공부를 위해 유학을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학과 장학금도 꾸준히 받았다. A 씨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학교 조별 과제에서 자신이 발표를 맡았고, 여행을 갔을 때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도 부를 정도로 활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병원에 입사했을 때도 딸의 기대감은 컸다고 한다. 그는 “딸이 졸업을 앞두고 서울아산병원 한 군데만 지원해 합격했다. 그만큼 그곳을 가고 싶어했고 합격한 후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사 후 한 달이 지나자 딸의 모습은 변했다. “저에게 ‘엄마 너무 힘들어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직장 생활 원래 쉽지 않다고, 모르면 선배한테 여쭤보라고 다독였어요. 그런데 ‘딴 세상 얘기 듣는 표정’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주 답답했겠구나’ 싶어요. 지금이라면 바로 데리고 나왔을 거예요.”

A 씨는 “병원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공황장애·우울증을 운운하더라. 하지만 그런 성격이 아니다”며 “몇 달 만에 성격이 바뀌었다면 그건 병원 시스템의 문제 아닌가. 딸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아산병원 전경. [중앙포토]

서울아산병원 전경. [중앙포토]

서울아산병원은 상반기 내에 간호인력 110명 추가 충원, 신입 간호사 담당 환자 수 경감 등을 담은 개선안을 지난달 내놨다. 이에 대해서 그는 “병원이 개선책을 내놨다는 건 태움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선욱이는 이로 인한 피해자인데, 아직 진정한 사과가 없다”고 말했다.

A씨가 바라는 건 하나다. “병원이 우리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해요. 그것만을 바랄 뿐이에요.” 고 박선욱 간호사 3차 추모집회는 오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오후 5시에 열린다. A 씨도 그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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