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김영철 정보맨들이 북미회담 성사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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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북ㆍ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 등을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았을 때 의외의 장면들이 포착됐다. 우선 공식오찬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주관했다는 점이다. 또 김영철은 노동당 본청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했을 때도 김 위원장 오른쪽에 자리했다. 정작 이수용 당 부위원장이나 이용호 외무상 등 외교라인은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오른쪽 두번째)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이 지난 9일 노동당 본청에서 북미정상회담 의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이 김영철 당 부위원장.[사진 연합뉴스]

김정은(오른쪽 두번째)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이 지난 9일 노동당 본청에서 북미정상회담 의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이 김영철 당 부위원장.[사진 연합뉴스]

김영철의 등장은 그동안 남ㆍ북ㆍ미가 물밑에서 가동했던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오찬 도중 김영철에게 “파트너”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북ㆍ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움직인 인물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폼페이오 장관, 김영철일 것이란 세간의 관측을 입증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무장관에 발탁되기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아 북한 관련 정보활동를 총지휘한 인사다. 한국이나 미국의 경우 보안을 위해 정보기관이 움직였을 수 있지만, 북한은 미국과 뉴욕 채널이 있음에도 통일전선부가 나선 점이 눈길을 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김영철이 정보수집과 공작을 업무로 했던 정찰총국장 출신이어서 정보 맨들과 코드가 맞았을 것”이라며 “실제 통전부에도 정보 수집 기능이 있어 국정원이나 CIA를 상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전부에 정보기관의 성격도 있다는 뜻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화가 끊긴 상황을 타개한 뒤에 시스템(외교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에 적극성을 보이는 김영철의 성향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철은 정찰총국장 시절부터 업무에 욕심이 많았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에는 본연의 업무인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경협과 외교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통전부에 해외동포를 관리하는 조직이 있어 국제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당 국제부나 외무성에서 관할하는 외교 문제에 김영철이 발을 담그면서 향후 어떤 식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용수 기자 nkys@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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