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룡<고대교수·정치학>|미국은「반미」도 경청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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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우리국민은 미국을 대체로 좋게 보아왔고 그들의 잘 잘못을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근대이래 우리민족은 일본을 제1의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항일운동당시 미국인이 자그마한 편의를제공해주어도 그저 고맙기만 했고 해방후 운명적으로 반공을선택한 우리가 한국전쟁때의 혈맹인 미국을 쉽게 잊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컨대 우리의 근대사에서는일본과의 불구대천의 싸움때문에 미국선박 셔먼호의 침략쯤은잊어버리기 쉬웠고, 한일합방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미국은 전문가나 알고 있을정도다. 그리고 70년대까지 냉전문제가 팽배할때만해도 미국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금기로 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80년대중반부터 주로 청년·학생을 중심으로한새로운세대들이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종래의 미국상에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많은한국인들은 아직도 판단을 유보하거나 설혹 미국을 비판하더라도 직접행동을 통한 의사표시만은 자제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미관계는 큰 역사적 전환점에 서있는 실감이 든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오랫동안 부문의성역으로 보던 미국을 비판적으로문제삼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첫째로 국토분단을 들지않을 수 없다. 이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연구가 있었고 그 결과 38도선은 미국이 그어서 소련의 동의를 얻었다는것이 통설로 되어있다.
크게 보면 분단은 미소의 타협의 산물이고 구체적 결정과정에서 미국이 분할선의 획정에 이니셔티브를 쥐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미국에 분단의 1차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무리는 아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대국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당한 분단이 그후 6천만 동포는 물론 한국국민에게 얼마나 많은고통을 가져다주었던가. 실로 분단43년은 일제36년과함께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린 비극이 아닐수 없다.
둘째로 미점령정책의 실패를강조하고 싶다. 우리국민 가운데1945년부터 3년간 미군이한국을 점령통치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더욱놀라운 것은 미군정에대한 관심이 그당시 생존했던 세대보다 이 시대를 역사적 과거로만 아는 청년·학생층에서 가히폭발적이라고 할만큼 크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정치구조의 원형이 형성된 미군정기를 파헤쳐보자는 것이 그들의 강렬한 지적욕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미군정은일제잔재를 공산주의적 방법으로 청산했던 소련군정과 비교하거나 또는 과감한 민주개혁으로 효과적인 반공정책을 수행했던「맥아더」의 일본점령통치와비교해봐도 실패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미군정은 일제잔재의 청산이나 적극적인 민주개혁 그 어느 것도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세째로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의 독재정권·권위주의정권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이다.
해방후 미국은 친일세력, 이승만정권, 박정희정권에서 출발하는 기나긴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사전공작이든 사후추인이든간에 이들을 지원해왔다. 반공을 앞세워 민주화를 희생시켰지만 결코 유효한 반공이될수도 없었고 그 상처는 고질적인 유산이 되어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져 있다.
마지막 네째로 한미관계를미국에 대한 한국의 구조적 종속으로 보는 시각을 빼놓을수없다. 분단과 점령, 그리고 독재정권의 지지로 이어지는 전후미국의 대한정책의 궤적은 한국의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그 결과는 오늘날 한국에서 종속론·제국주의론·신식민주의론, 심지어 주체사상론등 다양한 급진이론으로부터 전면적 공격의대상이 되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미국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명시적이든암시적이든 우리국민의 각계각층에 골고루 퍼져있다고 말할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분단을 지나간 역사로 받아들이면서도그 중요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잊지않고 있으며, 미국이 정통성이 약한 역대정권들을 지원해온 사실도 잘알고 있다. 미군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면 알수록 미점령정책이한국의 민주화로 연결될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그리고 평균적인 한국국민들은 급진적 사상이나 역사관에토대를 둔 반미운동에 지지를보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한미관계가 종속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의 효용과 동시에 부담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담배·쇠고기등한미무역관계에서도 줏대있는한국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볼때 미국에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무조건 수용에서 조건적 비판내지 반대로 이행하는 것은 하나의 추세로서올것이 온것이고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할 정치적 홍역이라고 볼수 있다.
원컨대 미국은 그들에대한 비판이나 반미를 일부 좌경세력의 일회적인 주장으로 치지도외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오늘날 미국에대한 한국인의새로운 물음은 많은 한국인의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한국인스스로에 대한 물음의 반영인것이다. 미국은 우정에서 적의에 이르는 모든 한국인의 비판을깊이 경청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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