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돕는다는 로레알···육아휴직자에 "퇴사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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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화장품기업 ‘로레알’ 한국법인 내에서 임원 폭언과 육아휴직에 따른 부당 처우 논란이 불거졌다. 폭언에 시달리던 입사 1년 차 직원은 3개월 전 퇴사하기도 했다. 이 기업은 ‘당신은 소중하니까요’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하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을 위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여성친화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9일 로레알 제2노조에 따르면 임원 폭언 문제는 지난 1월 말 피해 직원이 회사 측에 폭언 녹음파일과 진정을 내면서 드러났다. 사표도 함께 제출했다. 해당 임원의 인사위원회는 직원 퇴사 후 한 달여 뒤에 열렸고 ‘6개월 감급’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일부 직원들은 “피해 실태 전수 조사, 회사 측의 재발 방지 약속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며 사무직을 중심으로 제2노조를 만들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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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 후 다른 피해 사례들도 나왔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피해자의 녹음파일ㆍ진술서에 따르면 해당 임원의 폭언 행위는 수년째 이뤄졌다. 녹음파일에는 “개X같은 말하지 말고. 그게 무슨 의지고 미친 거지”“발가락 때만큼도 못하면서”“저능아” 같은 욕설이 담겨 있었다. 이 욕설을 들은 피해자는 “녹음 파일은 일부일 뿐이다. 수년째 폭언을 들었고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 따르면 해당 임원은 교육 목적이라며 책상 위에 서류가방 속을 그대로 뒤집어 내용물을 확인하거나 거래처 관리를 검토한다며 카카오톡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 직원은 “15주년 근속 휴가(7일)를 썼더니 ‘요즘 일하기 싫은 모양인데, 몇 달치 월급을 줄 테니 그만둘 생각 없냐’는 얘기를 들었다”고도 했다. 7년 전 퇴사했다는 한 직원은 “당시에도 욕설 등 폭언이 심해 그만두게 됐다”며 “흰색 와이셔츠를 안 입고, 안경을 쓴다는 이유로도 욕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회사 측은 “지난 1월 퇴사 사원의 진정에 따라 진행된 ‘6개월 감급’ 징계와는 별개로 추가 피해 사례를 인지한 상태”라며 “직원 대상으로 피해 사례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곧 인사위원회도 열어 해당 임원에게 문제가 있다면 추가 징계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레알 사무실 모습. [사진 로레알 홈페이지 캡처]

로레알 사무실 모습. [사진 로레알 홈페이지 캡처]

회사 측의 육아 휴직 부당 처우 문제도 제기됐다. 한 남성 직원은 3개월(지난해 11월~지난 1월) 육아 휴직을 썼다. 하지만 이 직원은 “휴직 신청을 앞두고 회사 측에서 ‘남자가 써서 좋을 게 없다. 갔다 오면 네 자리 없다’며 3개월 월급을 줄 테니 퇴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회사의 권유를 거절하고 지난 2월 복직하자 두 달 동안 업무가 주어지지 않다가 지난달 초에서야 ‘인사부’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이 직원은 “회사 측에서 ‘이제 인사부가 됐으니 노조 가입은 안 된다’고 했지만 이를 거절했다”며 “이번에는 없던 직책을 만들어 발령을 냈지만 여전히 인사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원 폭언 문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제2노조의 부위원장이다. 그는 “지난달 고용노동부ㆍ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도 냈지만 ‘사측 답변을 들어보겠다’고만 하고 여전히 조치된 게 없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2개월간 업무를 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복직 후 기존에 해오던 업무와 동일한 업무를 찾는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생겼다. 대기발령이 아니기 때문에 월급도 동일하게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직원의 기존 업무가 판매사원 300명의 관리라서 잠시라도 비워둘 수 없어 다른 사람을 채용했고 이를 알려줬다”며 “인사부 발령을 낸 후에야 직원의 노조 가입 여부를 알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말에는 기존해 하던 유사한 업무를 하는 자리로 발령을 내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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