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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패, 부실 통계가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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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동산정책의 근간이 되는 전국 인구별 토지 보유 현황을 계산하며 영아까지 모집단에 포함했다" "한.일 어업협상에 나서며 근해 어획량 통계도 파악하지 못했다." 10일 '바른 과학기술사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주최 포럼에서 학계가 제기한 과거 부실 국가통계 사례다. 학자들은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통계 조작의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며칠 전 중앙일보가 정부의 살림살이(재정) 통계가 부실하다고 비판한 기사는 국가통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라며 "부실통계는 필연적으로 정책의 실패와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꼽은 대표적인 부실통계 사례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주택.토지 등 부동산 관련 통계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7월 '상위 1% 인구가 전체 사유지 면적의 51.5%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가 한 달 뒤 '상위 1% 세대가 사유지 34.1%를 보유하고 있다'고 대체했다. 토지 보유 현황을 계산하면서 모집단을 영아를 포함한 전국 인구를 사용했다가 왜곡논란이 일자 가구 수로 바꾼 것이다. 또 행정자치부와 통계청은 우리나라 주택의 자가보유율을 각각 54.6%와 62.9%로 달리 발표했다. 중요한 부동산정책에 영향을 미칠 통계를 두고 국가기관마다 다른 수치를 내놓은 것이다. 정 교수는 "부동산정책의 주요 지표가 제각각이어서 국민과 정책의 혼란만 가중시킨 사례"라고 꼬집었다.

통계 자체의 부실뿐 아니라 통계를 정책에 반영하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1983년 이미 (합계)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졌지만 정부의 출산억제정책은 96년까지 계속됐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비과학적 정책이 한국을 세계 최저 출산국으로 전락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현재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양극화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전 국민의 소득을 제대로 평가한 소득자료가 아직 없어 양극화 수준을 측정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현 정부가 역대 정부에 비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정책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라며 "양극화 역시 통계적 근거가 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정책운영과는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함성득 고려대(행정학) 교수는 "통계 인프라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단임제 대통령이 짧은 기간 업적을 성취하려는 단기적 시각을 갖기 때문에 통계 조작, 자의적 해석이 생길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동수 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은 "정부통계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과 개선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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