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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金諾<금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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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34면

“도진겁파형제재 상봉일소민은구(渡盡怯波兄弟在 相逢一笑泯恩仇:온갖 파란과 곡절을 겪었더라도 형제 사이의 정은 아직 있는지라 서로 만나게 되면 한 번 웃음으로 과거의 은혜와 원한은 모두 잊고 마는 게 아니겠나)”. 지난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역사적 만남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화춘잉 대변인의 이 대답은 중국의 문호 루신(魯迅)이 1933년에 발표한 시인 ‘제삼의탑(題三義塔)’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아무리 밉더라도 막상 만나고 보니 웃음이 나오고 오랜 앙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던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역시 남북은 한 핏줄 한 형제가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넋 놓고 감상에만 젖어 있을 때는 아닐 게다. 일각에선 합의 수준이 격화소양(隔靴搔癢), 즉 신발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 것처럼 시원하지 않다고 꼬집기도 한다. 특히 무섭게 고도화돼 민족의 생존 전체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수준을 고려할 때 두 정상의 비핵화(非核化) 합의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관건은 이행이다. 이와 관련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합의를 ‘계포일낙(季布一諾)’과 같이 굳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계포는 초(楚)나라의 명장으로 체면을 소중히 여기며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황금 백 근을 얻는 게 계포의 한 번 승낙을 받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며 칭송했다. 한 번 승낙한 약속은 천금과 같다는 ‘일낙천금(一諾千金)’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틀림없이 승낙한다는 뜻으로 ‘금낙(金諾)’이라고도 한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란 말도 있는데 북한의 핵 폐기가 4.27 공동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의 취지에 따라 분명하게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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