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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 쌓아둔 돈 자본금의 6배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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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체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돈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구조가 좋아져 금융 비용이 주는 등 돈 나갈 곳은 줄었지만 신규 투자를 안 하다 보니 돈이 자꾸 쌓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제조업체의 자금 유보율은 사상 처음으로 600%를 넘어섰다. 유보율은 기업이 쓰고 남은 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9일 "거래소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제조업체 487개사(관리종목 제외)의 평균 유보율은 607%로 전년보다 100%포인트 높아졌다"고 말했다.

유보율이 600%란 것은 기업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회사 안에 남겨둔 돈이 자본금의 여섯 배가 넘는다는 의미다. 자본금이 100원인 회사라면 607원의 자금을 회사 안에 쌓아 두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제조업체 전체 잉여금은 298조4984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5.8% 늘어난 반면 자본금은 49조1784억원으로 3.3% 감소해 유보율이 더욱 높아졌다. 삼일회계법인 정오영 회계사는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 각종 규제로 기업이 신규 투자를 꺼리다 보니 유보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등 투자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제조업체들은 전년보다 이익 규모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유 현금은 더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 제조업체 526개의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10.4% 줄었다.

이화여대 서윤석 교수는 "보통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라며 "그러나 최근엔 투자나 배당은 늘지 않는데도 유보율만 높아져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보다 눈앞의 현금 챙기기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0대 그룹은 잉여금 135조3243억원, 자본금 19조4388억원으로 유보율이 전년의 595.4%에서 696.2%로 늘었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이 154.4%포인트 늘어난 1163.4%로 가장 높았고 SK그룹이 1057.7%로 1000%를 넘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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