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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하나 된 남북 탁구, 웃음꽃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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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남북한 여자탁구 선수들이 단일팀 구성에 합의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지희, 차효심(북), 김지호, 최은화(북), 유은총, 김송이(북), 양하은, 서효원, 김남해(북). [연합뉴스]

남북한 여자탁구 선수들이 단일팀 구성에 합의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지희, 차효심(북), 김지호, 최은화(북), 유은총, 김송이(북), 양하은, 서효원, 김남해(북). [연합뉴스]

2018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8강전이 열린 3일 스웨덴 할름스타드의 할름스타드 아레나. 남북한 맞대결이 예정된 이곳에 양측 선수 9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들은 경기하는 대신, 함께 손을 맞잡았다. 경기 직전 양측 선수단이 남북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한데 어울려 셀카를 찍었다. 한 팀이 된 이들은 대회 준결승에 자동 진출했다.

세계선수권 여 단체전 깜짝 단일팀 #양측 국기 그대로 … 팀 명칭 코리아 #남북 선수 섞여 이벤트 경기도 참가 #협회 “AG 단일팀은 선수 피해 없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단일팀 구성이다. 남북한 정상 간 판문점 선언으로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한 탁구 단일팀 구성은 추진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 세계선수권 도중 단일팀을 구성했다. 대회가 열리고 있는 스웨덴 현지에 있는 강문수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한국에 이어 북한이 8강에 진출하면서 양측이 단일팀 구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어 토마스 바이케르트(독일) 국제탁구연맹(ITTF) 회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해 열어 남북한 단일팀 구성 안건을 논의했고 참가국들이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긴급하게 단일팀이 구성되면서 남북한 선수들은 태극기와 인공기가 박힌 유니폼을 그대로 입는다. 대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때처럼 팀 명은 ‘코리아(KOREA, 약칭 COR)’를 쓴다. 엔트리에는 한국 5명, 북한 4명 등 참가 선수 9명 전원이 포함됐다. 4강 진출로 동메달을 확보한 만큼, 시상대에는 남북한 선수 전원이 오른다. 코리아 팀의 준결승전은 4일 열린다.

탁구는 남북 단일팀의 ‘원조’ 종목이다. 1991년 5월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분단 이후 처음 단일팀을 구성했다. 당시 46일간 호흡을 맞춘 여자팀은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남북한 탁구는 이후에도 각종 국제 대회에서 꾸준히 교류해왔다. 당시 우승멤버인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실력이 엇비슷한 선수들끼리 모여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문도 활짝 열었다. 인생에서도 가장 가슴 뜨거웠던 순간”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남북 관계의 급진전으로 이번 세계선수권에 참가한 남북한 선수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3일 오전 할름스타드 틸뢰산드 호텔에서 열린 ITTF 재단 창립기념회 때는 남북한 여자 선수 4명이 등장했다. 남측 서효원(31·한국마사회)·양하은(24·대한항공), 북측 최현화(26)·김남해(22)는 남북한 선수 한 명씩 섞어 복식조를 구성해 이벤트 경기를 치렀다. 이날 재단의 1호 앰배서더(친선대사)로 임명된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재단의 취지가 ‘탁구를 통한 결속’인데, 남북한 선수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이벤트 경기는 정규 탁구대보다 작은 모형 탁구대에서 플라스틱 라켓으로 진행됐다. 경기 내내 뛰는 선수도, 보는 관중도 웃음꽃을 피웠다. 라켓이 어색했던 남측 서효원이 “어떡해”를 연발하자, 북측 김남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공격보다는 서로 공을 넘기는 데 집중했던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심판을 맡았던 마영삼 ITTF 심판위원장은 공동 우승을 선언했고, ITTF 관계자들도 큰 박수로 즐거워했다. 서효원은 “(북한 선수들은) 말이 통해서 다른 나라 선수보다 편하다”고 말했다. 김남해는 “아주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아시안게임 남북한 단일팀 추진에 관한 취재진 질문에 “같이 힘내서 꼭 1등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성사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탁구 단일팀 구성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주정철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은 “(남북한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우리 쪽 탁구계는 긍정적이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오간 얘기는 없다. 위에서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탁구협회도 경기력 향상위원회 회의를 열어 개인전은 남북한이 각각 출전하기로, 단체전은 단일팀을 구성하되 엔트리를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늘리기로 기본 방침을 정했다. 협회는 이런 내용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탁구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을 마쳤다. 그렇기 때문에 엔트리 축소로 선수에게 피해가 갈 경우가 아니라면 단일팀으로 나간다는 게 내부 방침”이라고 전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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