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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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우리는 민주화라는 「변혁」을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는 범선에 타고 있다.
누구 하나 이 항해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승선했다. 그러나 모두다 한배를 기꺼이 탔으면서도 목표지점인 변혁의 구체적 내용과 항로의 선택에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변혁을 통한 체제정립의 문제만해도 크게는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냐, 사회주의적 민중공화국이냐로 갈라져 있고 보수반공·중도우파·중도좌파·좌파등 갖가지 유파가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
특히 항로 선택의 문제는 자칫하면 범선을 바다속으로 몰아넣고말 중요한 문제인데도 아직껏 명쾌하질 못하다.
「점진적 개혁」이냐 「폭력적 혁명」이냐의 두 갈래 항로는 어느 한쪽이 명쾌하게 다수로 확정돼 범선에 승선한 모든 사람들의 승복을받았다고 보기도 어려운것 같다.
겉으로 얼른 보아서는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점진걱개혁으로 의견이 모아진듯도 하지만 그 반대론자들은 아직도 선뜻승복을 않는다.
정부나 집권 여당측이 「체제부정」만은 용납치 않겠다고 할때의 체제는 바로 이같은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를 말한다고 볼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난해의 대통령선거와 금년 봄의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안정속의 「점진적 개혁」을 택하는 국민의지가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혁명론자들은 이같은 점진적 개혁론을 「기득권자들의 기만논리」라고 비판하면서 근본적 변혁을 주장한다.
점진적 개혁이란 가진자들이 절대 자기들의 이익에 치명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는 주려하지 않고 어린아이에게 빵을 조금씩 떼어주는 식의 「시혜적」인 베풀기 놀음이라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급진적 혁명은 흔히 폭력을 수반하기 마련이고 폭력의 동원에는 보복적인 폭력의 악순환이 따르기 때문에 절대 불가하다는 반론을 편다. 혁명과 폭력의 악순환은 종국적으로는 나라를망치고 만다는 주장도 한다.
물론 혁명을 위한 「폭력의 수용」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 무조건 수용의 과격론이 있는가 하면, 불의한 폭력을 타도하는 정의로운 폭력의 수용만을 인정하기도 하고, 무저항적인 「평화로운 폭력」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과연 지금 범선에 타고있는 우리들의 생각은 어떤가.
최근 한 대학교수가 실시한 서울시내 8개 대학생 7백15명을 대상으로한「한국대학생의공산주의·민주주의 사상의식」조사 (중앙일보4월21일자보도)에 따르면 「마르크스」 「레닌」이 주장하는 폭력혁명에대해 42%의 학생은 「절대 인정할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34%의 학생이 「찬성한다」는 응답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 또다시 심각해진다. 분명히 42가 34보다 많은 숫자임에는 틀림없지만 34%라는 숫자도 결코 단순한 소수로 치부하고넘어갈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 정책에 대한 응답에서는 「동·서독과 같은 상호 체제의 유지와 상호교류·협력」이 절대 다수(63%)이고 「무력통일」이나 「민중혁명」은 각각 4%씩에 불과했다.
물론 전국민을 상대로한 국민투표도 아니고 권위있는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도 아닌데 뭘 그리 그같은 숫자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고 비웃는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느껴온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점진적 개혁이라는 변혁 목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한번 생각해본것도 이같은 조사 결과에서부터 비롯했다.
어디 그뿐인가. 상아탑의 상징인 대학총장실 집기가 학생들의 폭력으로 마구 부숴지고 여야의 대결이 비록 으름장으로 그치고 말지라도 길거리로 뛰쳐나오겠다는 외마디 소리를 또다시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개혁론과 혁명론의 공방은 어찌보면 장군 멍군식의 논전같고 답답한 옹고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제 「변혁」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한 이 두개의 항로중 하나를 분명히 정해 모두가 승복하고 따르는 결단이 있어야겠다.
점진적 개혁론자들은 이미 버스 떠난뒤의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역정을 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타고있는 범선안의 사정은 그렇지만도 않은것 같다.
「이 대륙은 지금 혁명적 분위기」라는 전제를 확신하는 남미 해방신학자들은 지향하는 체제를 분명히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주의」로 밝힌다.
그러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수용에는 과격·중도·온건파로 갈리어 각기 앞서 말한것과 같은 여러형태의 폭력수용론이 엇갈려있다.
이제 우리의 민중론자·재야·학생운동권도 모두 분명한 체제노선과 변혁을 향한 항로의 선택에 결단을 내려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야 할것같다.
민주화라는 한마디로 국민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수 있었던것은 지난해 6월 민주항쟁때까지였다. 지금은 상황이 변하고 있다.
희망같아선 개혁론과 혁명론의 대결같은 낡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청산하고 다양한 소수의견도 인정되고 용인되는 화해로운 민족공동체를 이뤄 나갔으면 좋겠다.
이은윤<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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