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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전 거액 배당 5년 만에 12억이 1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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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자는 글로비스를 상장하기 이전부터 주식.현금 배당 등으로 거액의 재원을 만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글로비스 상장과 비자금 조성 과정에 현대차 기획총괄본부가 깊숙이 개입했으며, 이런 과정을 정 회장이 보고받았다는 전.현직 현대차 관계자의 진술이 나왔다.

◆ 12억5000만원이 1조원으로=2002년 이후 글로비스의 재무제표와 상장 과정을 분석하면 정 회장 부자는 상장 때까지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회장 부자는 글로비스 상장 이전에 투자 원금의 10배가 넘는 돈을 배당금으로 회수했다. 2001년 정 회장과 정의선 사장은 각각 5억원(액면가 5000원)과 7억5000만원을 투자해 한국로지텍(글로비스 전신)을 설립했다.

글로비스는 2003년 이들 두 명뿐인 주주에게 현금 200%, 주식 200%를 배당했다. 5000원짜리 한 주에 1만원의 배당금을 주고, 추가로 신주 두 주를 무상으로 얹어 준 것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과 정 사장은 각각 40억원과 60억원의 현금을 챙겼고 보유 주식도 세 배로 늘렸다.

글로비스는 2004년 30%(주당 1500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 33억여원을 정 회장 부자에게 안겨줬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상장 뒤엔 주주 배당을 대폭 축소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주총에서 시가의 0.3%인 주당 150원을 배당했다.

정 회장 부자의 '종자돈 불리기'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들은 그룹 내 물류 관련 업무를 글로비스가 독점함에 따라 회사 가치가 크게 높아진 2004년 2월 지분 25%를 1000억원을 받고 노르웨이 해운사인 빌헬름센에 매각했다. 애초 투자한 돈의 100배에 가까운 액수였다. 정 사장은 이 돈으로 기아차 주식 1.01%를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상장 이후 치솟은 주가는 정 회장 부자에게 장부상 평가차익을 안겨줬다.

글로비스 주가는 6일 4만19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정 회장(28.12%)과 정 사장(31.88%) 지분의 평가액은 각각 4423억원과 5015억원에 이른다. 12억원의 투자금이 1조원 가까이로 불어난 셈이다.

◆ "기획총괄본부가 글로비스 상장 주도"=검찰은 현대차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고, 사용하는 세 가지 덩어리가 시스템으로 분화돼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채양기 기획총괄본부 사장이 글로비스 상장을 주도했고, 글로비스를 키워가는 과정을 대부분 정 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채 사장은 글로비스뿐 아니라 현대오토넷 등 문제가 된 계열사들의 자금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며 "실질적으로 계열사의 자금 관리를 하면서 승계 구도 만들기에 깊이 간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퇴직한 고위 임원 D씨는 "글로비스는 정 사장이 후계 승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회사였다"며 "상장 일정이 촉박해 일부 경영진은 늦추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채 사장이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글로비스는 지난해 주식시장 폐장일 직전인 12월 26일 상장됐다.

김태진.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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