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미「캐시어스·클러이」|「알리」로 더 유명한 "검은철 철권"|로마서 「금」딴뒤 흑인 푸대접에 프로전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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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복싱이 올림픽의 경기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때었다.
올림픽의 복싱사는 크게 순탄치는 못해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는 대회조직위가 복싱을 잔인한 스포츠라 하여 기어이 경기종목에서 제외시켰으며, 판정소동등으로 얼룩졌던 1924년 파리올림픽이 끝난뒤에도 폐지론이 대두됐었다.
올림픽을 통해 배출된 세계챔피언 가운데 다소 특이한 인물이 「윌프레도·고메스」(푸에르토리코). 다른 「동창생」들이 모두 금메달리스트였던데 반해 그는 72년 뮌헨올림픽 플라이급에서 1회전탈락의 「낙제점」을 받고도 WBA·WBC 통합챔피언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60년 로마올림픽에 라이트헤비급으로 출전한 18세의 「클레이」는 흣날 자신이 표현했던 바 「나비처럼 날아서 벌같이 쏘는」강연(강연)과 완급(완급)이 적절히 배합된 기교복싱으로 금메달을 따낸다. 특유의 익살과 기지로 선수촌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는 우승후 기자회견에서도 예의 말솜씨를 과시한다.
『흑인으로서(인종차별때문에)특정식당에서는 식사조차 할수 없는 미국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소련기자의 비꼬는 듯한 질문에 그 는『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관해 연구하는 자질있는 소련인을 많이 갖고있으니까…』하고 점잖게 받아넘긴다.
고향으로 돌아간 「클레이」는 금메달을 너무도 아껴 틈만 나면 닦고 광을 냈으며 잠잘때나 식사할 때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클레이」의 인생관을 바꿔놓는 중요사건이 발생한다.
향리 루이스빌 시장의 초대를 받아 친구와 함께 시장집무실을 찾은 「클레이」는 시장과 방문객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로마에서의 기자회견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시장은 「클레이」의 답변을 칭찬한 뒤 『악어와 뱀이 들끓고 진흙집에서 살아야하는 아프리카에 비하면 미국생활은 천국이라고 답했으면 더좋았을 것』이라며 껄껄거리고 웃었다.
기분이 몹시 상한「클레이」는 귀가길에 음식점에 들러 햄버거와 음료수를 주문했다가 또다시 모욕을 당한다.
백인전용이었던 그식당에서는 흑인손님은 받지않는다며 거절했던것.
달밤, 제퍼슨 다리위에서 한참동안 상념에 잠겨있던 「클레이」는 손에 쥐고 있던 금메달을 강물로 던져버렸다. 『착각은 이제 끝났다.』 「클레이」는 즉각 프로로 뛰어들어 제2의 복싱인생을 열었다. <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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