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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거제 지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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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비를 속절없이 맞던 동백꽃이 오롯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20m는 족히 넘을 아름드리 고목이 피운 꽃도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못하나 보다. 시들지도 않은 채 온몸으로 떨어진 붉은 꽃이 오솔길에 꽃으로 다시 핀 듯하다.

장승포에서 뱃길로 20분 남짓 거리인 지심도는 동백섬으로 불린다. 초겨울부터 늦봄까지 피고 지는 동백이 섬을 에웠고, 깎아지른 좁은 땅에 제비집처럼 터 잡은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살아간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태 검은 머리를 간직한 비결이 동백기름 때문이라는 장승포댁의 살아온 얘기가 동백처럼 애달프다.

"부모 손에 끌려 억지로 시집와서 눈물로 밥을 삶고 살았는데 동백꽃이 예쁠 턱이 있겠노. 하도 눈물로 세월을 지새우니까 안쓰러웠는지 서방님이 꽃을 따주면서 입으로 빨아보라 카데. 꿀물이 달짝한기라. 그때부터 서러우면 꽃물을 빨았는데, 참 많이 묵었제. 가을이면 열매 따서 동백기름을 짰는데, 시어미가 뭍으로 나가 양식으로 바꿔 왔제. 당시엔 하도 귀한 동백기름이라 열매 딸 땐 눈에 불을 켜고 살았는 기라. 거제시가 섬을 개발한다니 우짜겠노. 지금껏 섬을 지키고 살았는데 정든 섬을 떠날지도 모르겠데이. 요샌 맘이 벌렁벌렁해서 잠도 안 오는 기라."

섬을 오가는 여객선에 써진 '그 섬에서 쉬고 싶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천혜의 자연 휴양림 동백섬 지심도'라는 문구가 섬 개발로 그저 빈말이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바닥에 깔린 동백꽃을 찍으려면 비 온 다음날이나 바람 세찬 날을 택해야 한다. 빛이 부족한 숲이라 삼각대는 필수.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면 근경과 원경에 모두 초점이 맞게 되어 입체감 있는 사진이 된다.

HASSELBLAD X-pan 45mm f22 6초 Iso10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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