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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살인」직업병 위험수위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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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누가 이 어린 소년을 죽게 했는가.
문송면군. 15세. 서울 협성계공 공원. 88년7월2일 서울여의도성모병원서 수은중독으로 사망.
문군은 작년12월 충남서산에서 상경, 이 온도계제조회사에 취업했다. 집안형편때문에 돈을 벌며 야간공고에 다니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되는 듯 했다.
그러나 취업 두달도 못돼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떨리며 밤에 잠을 못이루는 증세가 나타나면서 소년의 꿈은 무너져내렸다. 바닥에 수은방울이 굴러다니고 수은증기가 떠다니는 밀페된 수은주입실 근무가 가져온 병이었다. 이빨도 2개가 빠져나갔다.
결국 공장을 그만둔 문군은 낙향, 병원을 전전했으나 한동안 병명도 알수없었다. 직업병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안은 초상집이 돼 소를 팔고 빚을 냈다. 형은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했다.
온 몸이 들이쑤시는 고통속에서 문군은 3월초 서울대병원에 입원, 수은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그제서야 영문을 알고 산재요양신청을 냈다. 회사측은 그러나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라며 일축, 외면했다. 노동부사무소도 「입증불충분」을 이유로 3차례나 신청을 반려했다. 문군의 사연이 신문에 보도돼 사회문제화되고서야 지난달 20일 회사와 당국은 사재처리를 서둘렀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꺼지는 생명을 되살릴순 없었다. 『무서운 서울을 떠나자』던 소년은 영원히 우리곁을 떠났다.
큰형 근면씨(20) 는 『동생의 죽음은 우리사회의 직업병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이 빚은 타살』이라며 울먹였다.
무성의한 사업주에 의한「간접살인」이라고까지 불리는 직업병이 근로자의 생존권 문제로 제기되며 사회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서울노동조합협의회·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등 17개단체는 4일 산업공해로부터 근로자의 건강과 인간다운 삶을 지켜줄 정부의 근본대책과 기업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앞으로의 노사분규에서도 산업재해는 주요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기준법 제정 35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7년이 지났어도 문군과 같은희생을 낳고있는 직업병실태를 점검해본다.
◇직업병 근로자=작업환경에서 비롯되는 직업병은 우리나라가 70년대부터 중학학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증가했으나 그동안은 경제성장의 목표를 위해 당국과 기업이 애써 외면해온 것이 사실.
작년에 전국의 5인이상사업장에서 건강진단을 통해 노동부가 밝혀낸 직업병소견자는 6천8백50명으로80년보다 42%가 늘었다.
그중 진폐가 가장 많아 4천9백81명이었고 소음에 의한 난청이 1천7백79명, 납중독및 유해광선 각 41명, 특정화학물질 5명, 유기용제중독등 3명이었다.
◇중금슥 중독=최근들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중금속중독. 비소등 중금속복합중독으로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년째 식물인간상태인 전 D중석근로자 김신용씨 (46) 는 17년여동안 주로 금속제련 용광로작업을 해온끝에 82년말부터 피로·충혈에 몸의 중심이 잡히지 않는 증세가 나타났다. 각종 중금속이 몸에 축적된 결과였으나 직업병이라는 생각은 꿈에도못하고 직장을 그만둔채 변원을 전전했지만 86년부터 전신마비로까지 악화됐다. 집안이 엉망이 되고 3천여만원을 날린 뒤인 86년10월에야 중금속중독진단을 받았고 3차례의 기각씨름끝에 작년 5월에야 직업병판정을 받았으나 소생가망은 없는 상태.
노동부는 현재 납·크롬·수은·카드뮴등 11종의 중금속을 직업병유발 위험물질로 인정하고있다.
그중 많은 것이 납중독. 대한산업보건협회가 취급업체의 공기중 납농도를 측정한 결과(85년)에 따르면 5백71건중 50건(9%)이 허용농도 (0.1㎎/㎥)를 넘었다.
납은 호흡기·소화기·피부를 통해 몸으로 침투하며 복통·현기증을 보이다 심하면 말초및 중추신경장애까지 초래한다.
◇유기용제피해=물질을 녹이는 벤젠등 유기화합물의 총칭으로 50종이 직업병유발인자로 노동부에의해 인정되고 있다.
유기용제중독은 페인트칠·유지·의약품추출, 플래스틱접착가공·드라이크리닝·금속제품의 탈지세정등 여러업종에서 발견된다. 휘발성이 강해 피부·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오며 마취작용에서 시작해 빈혈·중추신경장애·간장애·폐수종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진폐증=우리나라에서 직업병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치료가 불가능해 가장 큰 문제거리다. 작년 직업병환자의 73%를 차지했다.
87년8월현재 법적으로 인정된 진폐환자는 1만4천7백88명에 이르며 그중 장기요양이 필요한 중증환자가 2천8백여명. 호흡기능에 장애를 일으켜 노동력 상실률이 높고 폐결핵등 다양한 합병증이 뒤따른다. 석탄광부폐증, 유리규산에 의한 규폐증, 면폐증등 30여종에 이른다.
◇난청=직업병의 26%(87년)를 차지해 두번째로 많은 난청 역시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치명적 직업병이다. 강력한 소음이 생기는 조선·자동차제조·제강·광업등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소음규제기준은 90데시빌로 대한산업보건협회의 85년도 작업환경측정결과 측정건수 2만5천4백38건중 44%에 이르는 1만1천2백28건이 기준을 초과했다. 공법의 개선, 소음노출시간단축, 방음시설등이 대책.
◇석면폐증=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잠재상태이나 3천여종의 제품에 사용돼 90년대이후 기승을 부릴 소지가 적지않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노동과학연구소의 84년 측정결과 석면방직공장은 석면분진이 3∼9F/cc로 기준치(2F/cc를 크게 초과했고 자동차브레이크라이닝공강은 1.7F/cc였다.
◇대책=전문가들은 앞으로 노동부가 업주들에게 작업환경개선을 강제하는 쪽으로 강력한 행정력을 행사해야 산업평화도 도모될수있다고 지적한다. 고대의대 김광종 박사는 『기업주들이 보건관리를 쓸데없는 비용낭비가 아니라 당연한 투자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전환이 있어야 한다』고말했다.
또 ▲검진·치료전문의료기관과 시설확충 ▲정기검진등 근로자 건강관리 시책강화 ▲직업병 인정기준의 하향조정 ▲노사의 무지를 극복하기위한 직업병 교육강화 ▲산재보상절차의 개선 ▲전문직 공무원 증원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동부는 작년말 재해예방지도및 진단을 전담하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을 발족시켰고 6월초 직업병에 대한 장·단기대책을 세우는등 대비하고 있으나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나쁜 중소기업의 작업환경개선·직업병예방은 정부차원의 정책적 배려와 결단이 있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으리란 지적이다. <김 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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