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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이발 봉사 10년 '가위손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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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더 큰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은 그런 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스포츠 센터에서 '행수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행수(59)씨. 그의 가족은 주변에서 '사랑의 가위손 가족'으로 통한다.

벤처기업에 다니지만 이발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큰아들 김정현(38)씨와 미용사인 며느리 김정아(40)씨, 여기에 부인 정사분(53)씨와 작은 아들 김용석(34)씨까지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소외된 이웃을 찾아다니며 무료 이발 봉사를 10년째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발소가 쉬는 날이면 혼자 틈틈이 봉사를 해오던 金씨가 '가족이 함께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큰아들이 결혼하면서부터.

봉사활동을 할 때 늘 일손이 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중 미용사 며느리가 들어오자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며느리 金씨는 선선히 따라 나섰고 덩달아 대학시절 이발사 자격증을 따놨던 아들도 옆에서 짐을 챙겼다.

아내가 나서는데 남편이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봉사 현장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머리를 감기는 것은 자연스럽게 어머니 鄭씨의 몫이 됐다. 또 체육학을 전공한 작은 아들도 "스포츠 마사지로 봉사 활동에 동참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이렇게 구성된 '가위손 가족'이 찾은 곳은 양로원.노숙자촌.장애인 복지시설 등 매우 다양하다. 외로운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탑골공원도 金씨 가족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한곳이다. 또 구청으로부터 의뢰받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의 집을 직접 방문, 이발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들의 손길을 거쳐간 사람은 대략 1천5백여명. 이밖에도 金씨는 이발기술을 배워 사회에 적응하려는 탈선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으며, 부인 鄭씨는 올초 늦깎이로 마친 대학(서울보건대 장례지도학과)의 전공을 살려 양로원 등에서 장례식을 돕고 있다. 金씨는 "이발을 해줬을 뿐인데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쑥스럽다"며 "앞으로도 가위를 들 힘이 있는 한 봉사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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