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빼지말고 다음날 토해야" 신입에겐 여전히 불편한 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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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데 주량 이상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술에 취해 잠들었고, 길을 지나던 경찰이 깨워줬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김모(28)씨는 신입사원 시절 회식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회사 어른들의 생각은 그대로다"고 덧붙였다.

'저녁 있는 삶'이 주목받으며 기업들은 회식과 음주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조직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들은 술을 강권하는 기업 문화가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 건설사에 재직 중인 이모(29)씨는 "신입 때는 술자리에서 선배들도 눈치를 주고, 술자리를 업무의 연장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빼는 것보다 다음 날 내내 화장실에서 토하는 걸 봐주는 이상한 분위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에는 현대 글로비스 신입사원이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술자리 이후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과한 음주와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문화가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일부 기업들은 건전한 회식ㆍ음주 문화를 위해 '1가지 술을 1차로 끝내고, 9시 까지만 마신다'는 '119 캠페인' 등을 벌이기도 한다. 한 금융권 인사팀 관계자는 "최근에는 가족과 저녁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었고, 회식도 음주 이외에도 단체로 영화를 보는 '문화 회식'이나 맛집 탐방을 하는 등 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술 자리 대신 단체로 영화를 보는 '문화 회식'이나 맛집 탐방도 늘고 있다. [중앙포토]

술 자리 대신 단체로 영화를 보는 '문화 회식'이나 맛집 탐방도 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456명을 대상으로 한 '회식문화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사는 주로 어떤 회식을 하는가'에 대해 '술자리 회식'이 80.5%로 1위를 차지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79.2%는 회식을 업무의 연장으로 보고, 61.4%는 회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회식문화에 불만족하는 이유로 33.3%가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회식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직급, 호칭을 변경하는 등 수평화 노력을 하지만 집단주의는 여전히 강조되고, 무조건적 복종이 회식 자리까지 이어져 업무 효율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선택을 수용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회식을 통해 팀워크가 생기고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최근 입사한 세대는 그렇지 않다"며 "회식이 업무의 연장인 만큼 불필요한 회식을 없애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회식 자리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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