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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 휩쓴 봉대산 '소나무 무덤' 3만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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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일 오전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봉대산(해발 288m).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부산시산림조합 소속 인부 240여 명이 재선충병에 걸려 말라죽은 소나무들을 벌채하고 있었다. 인부들은 군사작전을 펼치듯 산을 에워싸고 작업을 진행했다. 벌채 대상임을 나타내는 붉은색 비닐 띠가 줄기에 묶인 50여 년생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병에 걸려 잎이 붉게 물든 앙상한 소나무들이 '사형집행을 기다리듯' 서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민족의 '상징나무'인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한 번 걸리면 치료가 불가능한 재선충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게 주원인이다.

재선충 병에 걸린 나무를 50∼60㎝ 길이로 잘라(사진①) 살충제를 뿌린다(사진②).나무 더미를 비닐로 덮은 뒤 흙으로 밀봉(사진③), 1주일 정도 놔두면 재선충과 매개충이 죽는다. 부산 기장군 일대 야산에 있는 재선충 소나무 더미(사진아래). 송봉근 기자

◆ 곳곳에서 소나무 '무덤'=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전국 53개 시.군.구에서 7811ha(전국 소나무림 150만ha의 0.52%)가 피해를 봤다. 산림청은 병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의 활동이 약한 이달 말까지 58만 그루를 추가로 벌채할 예정이다. 특히 부산은 피해가 가장 심해 88년 이후 이달 3일까지 베어 낸 나무가 74만 그루로 전국(178만 그루)의 42%를 차지한다.

부산 시내 산 곳곳에서는 요즘 잎이 붉게 죽어가는 소나무와 함께 음산한 공동묘지 같은 '소나무 무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무 속에 서식하고 있는 재선충과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애벌레를 죽이기 위해 벌채한 나무 더미를 살충제로 처리한 뒤 비닐로 덮어 밀봉해 둔 것들이다. 봉대산 벌채 작업반장 고인조(48)씨는 "봉대산에 있는 비닐 더미가 3만여 개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장읍 연화리에서는 최근 마을 당산목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도 벌어졌다. 200년 묵은 당산목 소나무 한 그루가 재선충에 감염돼 당국이 베려 하자 주민들이 "우리 마을 수호신에는 절대 톱을 댈 수 없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나무가 죽자 주민들이 포기, 결국 당산목은 사라졌다.

◆ 희귀 소나무 보호에 비상=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소나무(숲) 35곳 중 18곳이 재선충병 발생 지역에 있거나 인근에 있어 이들 나무의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지난해 5억원, 올해는 6억여원을 들여 방제 사업을 펴고 있다. 특히 260여 년생 거목 750여 그루가 있는 경남 하동군 하동읍의 송림(천연기념물 445호)에는 올해까지 4억4000만원을 투입한다.

충북에는 아직 재선충병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1월 17일 산림청장.문화재청장.보은군수.소나무지키기국민연대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에 대해 예방약을 뿌리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산림청이 자체 개발, 시험을 통해 100%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 아바멕틴 등 두 종류의 재선충병 예방 주사약이 뿌리 주변에 투입됐다. 이 약제를 한 번 투입하면 2년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준호.김관종 기자 <choijh@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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