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벼락 판결' 유리컵은 특수상해···조현민 케이스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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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음료 등을 뿌린 혐의로 입건됐다. [사진 JTBC 방송 캡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음료 등을 뿌린 혐의로 입건됐다. [사진 JTBC 방송 캡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의혹에 대해 17일 경찰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조 전무가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광고대행사 직원들을 향해 뿌렸고 피해자가 얼굴과 안경을 닦았다”는 목격자 진술을 받았다. 유리컵에 대해서는 “사람 없는 곳으로 던졌다” “컵을 밀쳤다”는 등 진술이 엇갈리고, 조 전무 측은 “떨어뜨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리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액체를 얼굴에 뿌리는 것 역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폭행’이다. 형법상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액체를 상대방에게 뿌리는 폭행의 실제 선고 형량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2015년 11월 미술학원에서 물감통에 든 물을 학원 원장에게 뿌린 학부모에게 폭행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경찰관에게 종이컵에 든 커피를 뿌린 혐의로 법정에 왔던 이모(58)씨는 공무집행방해죄로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서울북부지법 2015년 7월 선고).

하지만 이씨 사건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CCTV 확인 결과 이씨가 일부러 경찰관을 향해 커피를 뿌린 게 아니라, 경찰관이 이씨의 멱살을 잡고 파출소 안으로 잡아끄는 바람에 이씨가 왼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쏟아진 것으로 결론 났기 때문이다.

종이컵에 든 커피. [중앙포토]

종이컵에 든 커피. [중앙포토]

CCTV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라면, 피해자와 가해자 중 누구의 진술이 더 믿을만한가가 쟁점이 된다. 2016년 회사 동료에게 회의실에서 커피를 뿌리고 목을 조른 혐의로 울산지법에 온 사건이 있었다. 상황을 목격한 사람도, 상황이 끝난 후 피해자의 옷에 묻은 커피 얼룩을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재판부는 “얼굴에 쏟은 게 아니라 커피가 엎질러진 것”이라고 했다가 “화가 나 커피잔을 탕 하고 내려놨다가 커피가 튀었다”고 번복한 가해자의 말보다 “커피를 뿌리고 목을 조르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피해자의 말이 더 믿을만하다고 봤다. 피해자 목에서 붉은 자국을 봤다는 동료들의 증언과 피해자가 낸 진단서도 도움이 됐다. 결국 상해죄로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

물이 든 유리컵. [중앙포토]

물이 든 유리컵. [중앙포토]

사람을 향해 던진 컵의 재질이 유리라면 ‘특수폭행죄’라는 큰 죄가 되고, 그 컵이 깨져 사람이 다쳤다면 ‘특수상해죄’라는 더욱 큰 죄가 된다. 특수폭행죄는 징역 5년 이하, 특수상해죄는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가 법정형이다. 대구지법은 지난 1월, 찻집에서 동호회 회원에게 유리컵을 던져 얼굴에 상처를 입힌 60대 남성에게 특수상해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서로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고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깎아준 형량이다.

플라스틱 컵은 유리컵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다고 여겨지지만, 폭행죄를 면할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앞서가던 차가 급제동을 했다고 화가 나 조수석 쪽 열린 창문을 통해 딸기음료가 든 플라스틱 컵을 던진 20대 남성은 인천지법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보복운전도 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고, 피해자의 옆구리를 맞춘 딸기음료가 차 시트에 쏟아졌기 때문에 재물손괴죄도 적용됐다.

던진 액체가 뜨거워 맞은 사람이 화상을 입은 경우라면 실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대구지법은 지난 2월, 버너 위에서 끓고 있던 해물짬뽕탕을 친구에게 쏟아부어 전치 12주의 화상을 입힌 20대 여성에게 특수상해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치료비 7000만원을 주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재판부는 "사소한 이유로 무자비한 범행을 저질렀고, 여성인 피해자가 후유 장애로 평생 심대한 고통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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