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漢字, 세상을 말하다] 合從連衡<합종연횡>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78호 34면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7국이 경합했다. 서쪽에 자리한 진(秦)과 동쪽에 위치한 제(齊)가 강성했으며 그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연(燕)과 조(趙), 위(魏), 한(韓), 초(楚)가 길게 늘어서는 형국이었다.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다. 당시 천고의 기인으로 불리는 귀곡자(鬼谷子) 문하에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동문수학했다.

유세에 나선 소진은 진에 대항할 공수동맹을 역설했다.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 꽁무니는 되지 않아야 한다(寧爲鷄口 無爲牛後)”며 중원의 나라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것을 합종(合從)이라 한다. 종(從)은 종(縱)의 뜻으로 남북을 말한다.

그러자 진을 위해 장의가 등판했다. 위나라 출신의 장의는 어느 날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얻어맞았는데 걱정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소? 그렇다면 됐소.” 세치 혀 하나로 천하에 도전장을 내민 달변가의 모습이다. 그 장의가 6국을 돌며 합종이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장의의 말이 먹혀 진은 6국과 개별적으로 횡적인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연횡(連衡)이다. 횡(衡)은 횡(橫)의 의미로 동서를 가리킨다. 연횡이 이뤄지자 합종은 깨졌고 진의 중국 통일이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올해 들어 선보이는 광폭 외교가 세상을 놀라게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하고선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기습적인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4월 중순엔 재선에 성공해 전열을 가다듬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북·러 정상회담을 갖고 6월 초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란 보도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행보가 장의의 연횡을 닮은 모양새다. 국제 사회가 힘을 모아 북한을 제재하는 합종의 전략을 택하자 김 위원장이 주요 각국 정상과의 연쇄 회담을 통해 제재 무력화를 꾀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의 역사는 연횡의 손을 들어줬는데 앞으로의 형국은 어떻게 돌아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유상철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