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미치면 「중년위기」극복"|여학사협 토론회에 소개된 체험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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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불안·초조·우울·권태감·허무감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중년의 위기는 당사자들이 어느날 자신의 객관적 상황을 깨닫는 것으로 비롯된다. 흰머리·늘어난 체중·신체의 병이 계기가 될수 있고, 집안의 사춘기자녀와 노인이 위기감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보통 35∼50세에 나타난다.
그러면 중년, 특히 여성의 중년은 「상실과 허무의 날들」뿐일까. 정신신경과전문의 이호영박사(연세대교수)는 중년의 위기는 또하나 인생의 새출발의 기회가 될수 있다고 강조한다.
용감히 자기해체의 어둠속으로 들어가 『자신은 혼자이고, 늙었고, 한계가 많다』는 진상을 깨닫고 극복할때 새출발은 가능하다고 이박사는 23일 오후 종근당빌딩에서「중년의 새출발」을 주제로 한국 여학사협회(회장 김인숙)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말했다.
한편 이자리에서는 김인규(56·유황상사대표)·김은영(46·매듭연구가)씨등2명의 여성들이 중년의 새출발로 갖게된 일이 자신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체험적으로 밝혀 관심을 모았다.
김인규씨는 종업원 1백여명을 거느린 가죽제품 제조업체의 대표. 그는 지난 75년 해외출장중이던 남편의 느닷없는 별세로 회사운영을 떠맡게되어 완전 타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없이 남편사후의 뒷마무리,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속에서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원과 공원들을 대했고,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 이제는 회사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이렇다할 일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쇼핑·운동·전시회 구경으로 소일할때는 남편이 있어도 저녁이면 공허감이 가득 밀려왔어요. 그러나 일에 쫓기면서는 밤이면 단잠에 빠져요.』 6명의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 같지않고 젊고 활기에 차있다.
김은영씨(한국 매듭연구회부회장)는 중년이된 33세에 결혼 무렵 1년간 익혔던 전통매듭의솜씨를 다시 갈고 닦아 일가를 이룬 경우. 전통매듭의 기능보유자인 스승 김희진씨의 권유로였다.
요즈음 주부로는 드물게4명의 자녀를키우고 작년에 작고한 시댁어른을 모시는 큰살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하느라, 좋아하는 운동 테니스를 하느라 늘 바쁜 나날.
그러나 김씨는 『무엇이든 자신이 얼마나 절실히 원하느냐』가 중년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가질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얘기한다.
자녀들에게 완벽한 뒷바라지는 못하지만『끊임없이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이 전통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다른 의미의 교육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김씨의 바람. 그래서인지 4자녀는 요즈음 「몰두하는일」을 가진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것 같다고 한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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