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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일제시대 마케팅' 좀 지나치지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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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산업부 기자

최준호 산업부 기자

5층 빌딩의 외벽 간판이 온통 일본 히라가나·가타가나 투성이다. ‘야키토리’(燒き鳥)·‘아마자케’(あまざけ) 등 음식 이름 외에도 히타치·도코모·후지 등 일본 기업 이름들도 눈에 띈다. 외벽은 하늘색 타일, 목조 처마 아래엔 백열등이 불을 밝힌다. 서울 도심에 있는 한 일본 음식점 ‘○○구락부’의 겉모습이다. 건물의 디자인과 간판 글자체 모두 ‘구락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옛날’스럽다.

중앙일보는 2일 ‘일본에 빠진 한국’이란 기획기사를 통해 최근 한국 사회에 뜨겁게 불고 있는 ‘신 일류(日流)’를 보도했다 마침 전날 외신에는 일본정부관광국의 관련 발표가 있었다. 올 1~2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중 한국인이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이 1위였다. 일본 땅에서도, 한국 땅에서도 일본에 푹 빠진 한국인이 꽤 된다는 얘기다. 좋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말처럼 “일본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좋은 것은 드러내고 즐길 정도로 한국인의 의식 수준이 성숙해졌다”고 평가하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인쇄된 조간신문을 펼쳐보면서 한편으로 씁쓸함이 묻어났다. 왜 하필 ‘구락부’일까. 그러고 보니 ‘경성’이 들어간 일본 음식점도 적지 않았다. 둘 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용어다. 구락부는 클럽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서울이 경성이던 그 시절 수많은 구락부가 있었다. 이런 이름의 음식점들은 건물 안팎의 디자인에서 그 시절을 연상케 한다. 네이버 지도에 ‘구락부’라는 단어를 넣어보니 수도권에만 60곳이 넘게 나타났다. 대부분 일본 음식점들이다.

아마도 일본 음식과 옛 향수를 버무리자는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향수’를 누가 느끼고 싶어할까. 정작 그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에겐 향수가 아니라 치욕적이고 아픈 기억의 단어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혹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의 향수를 자극하자는 걸까.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들어온 기업 롯데가 롯데월드몰 식당가에 옛 시절 전차와 인력거 등으로 장식하는 ‘향수 마케팅’을 쓰지만, 거기에는 일본어 장식이나 ‘구락부’는 없다.

종업원에게 “손님 중에 일본 관광객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일본 관광객은 없고, 대부분 20~40대 한국인 청장년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일본의 음식이 맛있고, 그들의 문화가 좋아도, 일제 강점기의 향수에 호소하는 천박한 상술은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