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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피워보지도 못한 안타까운 소방관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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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신진호 내셔널부 기자

신진호 내셔널부 기자

“세 분의 소방관은 사람들이 다칠까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변을 당했다. (중략) 서른 살, 스물아홉살, 스물세 살이다. 인생의 봄날이었기에 슬픔은 더 가눌 길이 없다.”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소방관들의 참변 소식을 접한 뒤 청와대는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애도했다. 국민의 부름에 보답하고자 소방관들은 365일 24시간 잠들지 못한다고도 했다.

라디오를 조작하다 앞을 보지 못한 60대 운전자의 부주의로 젊은 소방관과 교육생 등 3명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된 새댁과 임용을 불과 2주가량 앞둔 예비 소방관이기에 슬픔은 더 컸다. 순직한 김신형(29) 소방교와 김은영(30)·문새미(23) 교육생은 2일 오전 9시 합동영결식을 거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이들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건 “개가 도로 옆 가드레일에 묶여 있다”는 신고를 받고 구조작업을 하던 중 참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화재 등 사람이 다칠 수 있는 긴급상황은 아니었다. 차량 통행이 방해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소방관이다.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 국도 43호선에서 25t 화물차에 들이받혀 부서진 소방차. [뉴시스]

지난달 30일 충남 아산시 국도 43호선에서 25t 화물차에 들이받혀 부서진 소방차. [뉴시스]

지금도 전국 4만여 명의 소방관들은 긴급하지 않은 민원업무에 투입되곤 한다. 지난해 출동 건수 가운데 잠금장치 개방이 16.5%(7만194건)나 됐다. 이번 사고와 같은 동물포획도 29.8%(12만5423건)나 된다. 이런 신고 때문에 정작 대형화재 현장에 제때 출동하지 못하기도 한다. 단순한 민원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반복된다.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67세로 일반 국민보다 14년이나 짧다.

소방청은 4월부터 단순한 문 개방이나 동물 사체 처리 등 긴급하지 않은 신고에는 출동하지 않기로 했다. 상황별로 기준을 구분, 이런 신고가 접수되면 거절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일선 소방관들은 “다급함을 어떻게 신고로만 판단할 수 있느냐”며 신고를 받으면 또 현장으로 달려나가겠다고 한다. 여러 조사에서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신뢰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인 것도 당연하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 우리 소방관은 충분히 헌신하고 있다. 국민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소방관을 개인의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깝게 순직한 세 소방관을 생각해서라도 단순한 생활문제는 스스로 처리하겠다고 다짐해보면 어떨까.

신진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