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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교육부 갑질 … 전화 한 통으로 ‘정시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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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교육팀 기자

남윤서 교육팀 기자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29~30일 경희대·중앙대·이화여대 등에 전화 걸어 현재 고교 2학년이 치르는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정시모집 비중 확대를 요구했다. 대입전형 사전 예고제에 따라 대학은 2020학년도 대입 전형계획을 지난달 30일까지 확정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이달 중 발표하게 돼 있다. ‘교육부 차관 전화’ 소식을 접한 서울 9개 대학 입학처장은 계획 제출 마감일에 부랴부랴 모여 교육부 의중에 대해 논의했다. 전형계획 제출 마감을 코앞에 두고 교육부가 계획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

정부가 대입전형 방향에 대해 권고할 수는 있다.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사업 등 공식적 정책수단도 있다. 대학가는 ‘왜 지금 시점에, 전화 통화로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교육부로부터 듣지 못했다. 대입 수시모집이 17개월밖에 안 남은 전국의 고교 2학년들도 ‘정시 확대’ 뉴스를 접하고 혼란에 빠졌다.

사태가 커지자 2일 교육부는 비공식 설명회를 열었다. 이진석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은 “수시가 너무 늘어나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학생·학부모 뜻을 대학에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입시계획 확정 직전에 요구한 것에 대해선 “수시 확대가 너무 급격해서”란 말만 반복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입에서 수시모집 비중은 입학사정관 인건비 지원 등 교육부 지원에 힘입어 10년 넘게 꾸준히 늘어왔다. 누구나 알고 있던 ‘수시 확대’를 교육부만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았다는 것인가. 이러니 교육부의 급작스러운 요구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액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학생·학부모의 뜻’도 출처가 불분명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정시 확대 찬반 의견을 조사해 봤느냐”는 질문에 이 실장은 “토론회에서 그런 반응이 많더라”고만 했다.

공식적 정책과정을 밟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행정적으로 처리하려면 구체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도 인정하듯 구체성도 떨어지는 요구를 어떻게, 그것도 전화로 요구할 생각을 했을까. 교육부 설명에 답이 있다.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정시 확대 요구를 대학 지원 사업 등과 연계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한계가 있어 차관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대학 자율인 대입 전형계획 변경을 ‘공식적 제도보다는 차관 전화 한 통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권력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선 쪽에서 비공식적으로, 그것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우리는 이를 ‘갑질’이라 부른다.

남윤서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