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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만으론 부족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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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영국은 쓰레기 종량제를 하지 않는다.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일반 쓰레기를 구청에서 준 용기에 따로 담아 매주 내놓으면 수거해 간다. 런던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웃들이 내놓는 재활용 쓰레기의 양이 매우 적어 놀랐다. 용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가정이 많았다. 수돗물 대신 마실 물로 생수를 쓰느라 일회용 플라스틱병을 자주 배출하는 우리 집과 달랐다. 한국에서도 재활용 쓰레기를 매주 배출했지만, 잘 구분해 수거통에 넣으면 할 일을 다했다고 여겼던 것 같다.

영국 정부가 플라스틱 줄이기 장기 계획을 발표하며 공개한 자료를 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2016년 기준으로 일회용 플라스틱병은 세계적으로 분당 100만 개가 팔려 나갔다. 생물학적으로 분해되려면 450년이 걸리는데, 새 병으로 만들어지는 비율은 7%에 그쳤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건강 문제이기도 해 바다로 흘러든 뒤 조각으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물고기 등에 섭취돼 인체로 유입된다.

수도권 일부 재활용 업체가 폐비닐과 스티로폼을 재활용품으로 수거할 수 없다고 밝혀 혼란이 빚어졌지만, 중국발 파고는 진작 유럽을 덮쳤다. 전 세계 폐플라스틱의 56%(2016년)를 흡수하던 중국이 문을 닫자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일회용 플라스틱병에 추가 세금을 물린 뒤 가져오면 반환해 주는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모든 포장을 재사용이나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 국가들의 대책은 일회용품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게 초점이다. 거리에서 사라졌던 식수 공급 시설을 다시 만들어 일회용 물을 살 필요를 줄이고, 개인용 컵을 가져가면 식수를 제공하는 카페 등을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수돗물의 품질을 믿을 만하게 유지하는 것은 필수 과제가 됐고, 대형마트 등에 플라스틱 포장을 쓰지 않은 제품만 전시하는 매대를 두는 계획도 발표됐다.

예고된 혼란을 방치했다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부처가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에선 스스로 불편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웨일스 바닷가 아버포스 주민들은 일회용 대신 유리병 제품을 쓰고, 카페 상인들이 단가가 비싸지만 생분해가 쉽게 되는 컵으로 바꾸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가 달라져야 대형 생산업체와 정부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냉동식품 유통업체인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랩 포장을 모두 종이나 펄프 쟁반 등으로 대체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정부의 대책 역시 주민들은 다소 불편을 감내하되 생산·유통업체가 책임을 지고 과도한 일회용 용기 포장과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성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