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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에 직면한 중국

중앙일보

입력 2018.04.1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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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3월 초 베이징 외신기자와 중국의 미국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했다. 수입 철강·알루미늄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을 끼친다는 이유로 발동한 무역확장법 232조가 화제에 올랐다. 한 서양 기자가 물었다. “신간 『화염과 분노』를 읽었나?” 중국인 전문가 세 명 모두 “읽었다”고 대답했다. 요약본과 원서 모두 읽었다며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자신했다. 선임 연구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안보를 책임져 온 미국의 고비용 저효율 방식이 수명을 다했다”며 “중국이 ‘거래’를 기대하는 이유”라고 했다. 미·중 갈등을 트럼프 현상 대신 구조로 파악했다.

얼마 뒤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2018 중국개발포럼(CDF)’을 찾았다. 미·중 관계를 다룬 ‘결정적 선택: 21세기 강대국 정치’ 회의장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미국 패널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건설적 관여(engagement)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두 대국 사이의 전쟁은 상상 불가하지 않다”며 “발생한다면 역사의 철칙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슨 교수는 저서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浮上)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투키디데스의 명언을 언급하며 ‘예정된’ 전쟁을 막을 방법을 제시했다.

그사이 대만 여행법 발효,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방중, 무역 관세 폭탄, 남중국해 항공모함 대치까지 미·중 힘겨루기가 숨 쉴 틈 없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속내는 중국 정책통이 열독한다는 『화염과 분노』 곳곳에 보인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최고 전략가는 고인이 된 로저 에일스 폭스뉴스 설립자에게 지난해 초 “중국은 1929년에서 30년에 이르는 시기의 독일 나치와 같다”며 “우리는 초(超) 민족주의 국가를 마주하게 될 거고, 일단 그렇게 되면 지니를 다시 램프에 넣을 수는 없을 겁니다”고 말했다.

책 말미에서 저자인 마이클 울프는 “다음 세대의 역사는 이미 다 쓰여 있으며 그것은 중국과의 전쟁에 관한 것”이라며 “상업·무역·문화·외교 전쟁을 아우르는 그 모든 전쟁에 대해 필요성을 이해하는 미국 국민은 거의 없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썼다. 미·중 대결이 무역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지난달 전인대에서 이뤄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임기 철폐 개헌을 적지 않은 중국인은 미국의 공세에 대비한 보험으로 여긴다. 그런데도 ‘승부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에 “시 주석과 나는 언제나 친구”라고 썼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앞에 선 두 정상의 행보에 전 세계가 숨죽이고 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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