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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련님 정치와 막장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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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일본지사장

서승욱 일본지사장

모리토모(森友)사학재단 의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조금씩 벼랑 쪽으로 몰고 있는 사건이다.

사학재단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헐값에 산 게 ‘발단’, 아베 총리 부부 관여 의혹이 불거진 게 ‘전개’, 의혹을 부추길 만한 부분을 재무성이 관련 문서에서 통째로 지운 게 들통나면서 드라마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남은 건 결말이다.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자민당 의원=“당신은 민주당 정권 시절 노다 총리의 비서관이었다.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의도적으로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것 아니냐.”

▶오타 미쓰루(太田充) 재무성 이재국장=“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며칠 전 참의원에서 오간 대화다. 관료의 답변이 마음에 안 들자 의원은 폭언으로 찍어 눌렀다. 관료는 고개를 흔들며 “아무리 그래도”를 연발했다.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부인이 관여 의혹을 받는 당사자, 문서 조작 주체인 재무성의 최고책임자다. 하지만 둘 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책임을 관료들에게 떠넘긴다. 전직 총리(기시 노부스케, 요시다 시게루)를 외조부로 둔 두 사람은 하인들 대하는 도련님들처럼 거침이 없다.

관료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 그들이 틀어쥔 인사권, 출세를 위해 바닥을 기는 관료들의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미리 헤아려 행동하는 것)’, 그 사슬이 만드는 모순과 부조리가 매일매일 확인된다.

압권은 ‘안하무인의 아이콘’ 아소 재무상이다. 그의 특기는 반말이다.

최근 국회 추궁 과정에서 그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을 계속 낮춰 불렀다. 사가와는 국유지 매매 계약 당시의 재무성 담당 국장, 이후 국세청 장관으로 옮겼다가 문서 조작 파문으로 사직했다. 아소는 국회에서 그를 ‘사가와 전 국장’ ‘사가와 전 장관’이 아니라 ‘사가와~’라고 불렀다. 야당은 급기야 “낮춰 부르는 건 책임이 모두 사가와에게 있다는 인상을 심기 위한 것이냐”는 공식 질문서를 정부에 보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아소 재무상은 평소에도 부하 직원들에게 경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는 코미디 같은 답변서를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최근 일본에서 존경받는 거물 정치인이 잘 배출되지 않는 데엔 인생보다 정치만 먼저 배운, 사람이 되기 전에 정치를 잘못 배운 정치인들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게 일본 정치의 전통이야~ 너희가 몰라서 그래”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실력으로나 품격으로나 역대 최악의 수준이라는 한국의 보수정치인 몇 분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법하다.

서승욱 일본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