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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뮤지컬에 대기업이 투자, '거울 공주 …' 살판 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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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야, 앞으로 여기서 담배 피지마. 냄새 주차장에 뱄다고 한 소리 들었단 말이야."

30일 오후 서울 정릉의 한 주택가. 3층 단독 주택의 20평 남짓한 지하실은 제법 그럴싸한 '뮤지컬 인큐베이터'였다. 바로 이곳에서 소극장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작품 하나 올리기도 빠듯한 이들이 어디 언감생심 돈을 내 연습 장소를 빌리겠는가. 연출가 민준호(29)씨가 머리를 굴려 자신의 집 지하실을 개조했다. 매트릭스를 깔고 쿵쾅거리며 몸을 굴렸고, 노래를 한답시고 빽빽거리며 소리를 질러도 위층 부모님은 모른척 눈감아 주셨다. 다만 마구 피워대는 담배만큼은 참기 힘드셨던 것. "부모님 눈 밖에 나면 정말 우리 갈 곳 없다고." 연출가의 목소리는 어떤 지시보다 더 절절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부모님보다 더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대기업 CJ가 돈을 내고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것. 대기업이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디 뮤지컬'과 '대기업 자본'의 결합이란 이들의 작업에 공연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우린 몸으로 때운다

'거울공주…'는 2년전 탄생한 작품이다. 민준호씨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졸업 워크숍 작품으로 선보인 것.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배우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 나무나 개울이 됐다. 밴드 없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뻐꾸기 소리 등 음향도 책임졌다. 기발한 발상에 선생님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용기를 얻은 이들은 졸업후 "관객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 다니겠다"는 취지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란 극단을 만들어 지방을 돌았다. 논산 성모의 마을, 청원 성보나의 집, 영동 자계예술촌 등. 지난해 밀양여름공연축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아카펠라 뮤지컬'이란 신용어가 생기는 등 평단의 호평도 잇따랐다. 창단 멤버 진선규(29)씨는 "지금이야 '미니멀리즘'이라고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처음엔 제작비 아끼려고 밴드 없이 우리 몸뚱아리만 썼던 것"이라며 킥킥댔다. 올 초엔 대학로에 돌아와 객석 점유율 100%를 넘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 수익보단 신뢰

'오페라의 유령''아이다' 등에 투자하며 3년전부터 '뮤지컬계 숨은 손'이었던 CJ가 이 작은 작품에 눈독을 들인 건 그 잠재력이다. CJ 한소영 부장은 "완결된 기성 작가보다 열정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을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덕분에 '거울공주…'는 예전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표 참조)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한달반 가량 공연된다. CJ는 이후 '김종욱 찾기''컨추리보이스캣' 등도 만들 예정이다.

대기업 진출은 과연 공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민준호 연출가는 "옛날 공연은 우리끼리 즐기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허허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프로가 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극단 '간다' 조한성 팀장은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인디 뮤지컬'이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계 역시 '대기업 싹쓸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안정된 자본력을 가진 CJ 같은 기업이 가난한 창작 집단을 지원해 공연계의 새 바람을 일으켜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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