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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연출, 목사는 엔터테이너 … 목회가 사라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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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12면

부활절 맞는 한국 교회, 홍정길 목사의 쓴소리 

부활절은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 최대 축일 중 하나다. 올해도 다음달 1일 전국의 교회에서 부활절 기념예배가 일제히 열린다.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엔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교회의 세속화 논란에 교인들의 윤리적 일탈이 겹치면서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더 늦기 전에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대형교회 흉내 교인 관리에 사활 #네트워크 강화, 교세 유지 궁리만 #신도들도 십자가 지려 하지 않아 #한국 복음주의도 반쪽만 가르쳐 #구원 후 삶의 변화 애써 외면하니 #이기적 자기 위안의 종교만 남아 #주일학교 없는 교회 50% 넘어 #젊은층 외면 속에 맥 끊길 우려 #한국 교회, 자아 성찰부터 해야

한국 기독교계 원로인 홍정길(76)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밀알복지재단 이사장)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홍 목사는 옥한흠(사랑의교회)·하용조(온누리교회)·이동원(지구촌교회) 목사 등과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며 한국 개신교 목회자 1세대로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끌어 왔다. 1997년엔 밀알학교를 세운 뒤 20여 년간 장애인 교육에 헌신했다. 그를 만나 부활절의 의미와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바를 물었다.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였지만 한국 교회 현실에 대한 진단은 냉정했다. 그는 먼저 자기반성과 성찰로 얘기를 풀어나갔다.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1세대 원로인 홍정길 목사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이기적인 기독교가 돼버렸다“고 토로했다. [중앙포토]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1세대 원로인 홍정길 목사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이기적인 기독교가 돼버렸다“고 토로했다. [중앙포토]

나는 가짜 목사였다

 목회 생활을 반추해 본다면.
“1966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니 목회한 지 50년이 넘었다. 하지만 교회 개척해서 처음 3년을 빼곤 목회자로 불릴 수 없을 것 같다. 목회의 본질은 요한복음 10장에 나와 있듯이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거다. 그런데 3년이 지나 500가정이 되고 교인이 2000명으로 불어나니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불가능해지더라.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management·관리)만 남게 됐다.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거다. 늘 고민이 많았다.”
 한국 교회가 뭘 가장 잊고 있다고 보나.
“무엇보다 목회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1세대는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미국의 대형교회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건강하다고 인정받는 미국 대형교회 목사들이 우리의 우상이었고, 그들이 하는 걸 보고 흉내를 내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날로 커지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관리하느냐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버린 거였다. 교회는 목사와 교인이 인격 대 인격으로 깊이 교류하는 현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게 결여되니 인격이 없는 목회가 돼버렸다.”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연히 구원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인간에게 새 생명을 준 게 구원의 본질이다. 또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성경도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구원 받은 친백성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나. 하지만 한국 교회는 후자를 잊어버렸다. 우리 말은 생명·삶·생활이 각각 다른 단어지만 영어는 ‘life’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나눠서 새 생명을 얻은 걸로 딱 끝나버리고 삶으로 연결하는 건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아주 이기적인 기독교인의 삶이 돼버렸다. 물질·건강 축복받고, 자식들 잘되고…. 복음의 본질은 사라지고 자기 위안의 종교만 남은 셈이다.”

부활절의 의미를 듣고자 찾아간 자리에서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원로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듣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쓴소리는 계속됐다. “최근 성추행 의혹을 받는 전직 검사장이 교회에 나가 용서를 받았다고 하자 여론이 들끓지 않았나. 영화 ‘밀양’에서도 아이 유괴 살해범이 교회에 나가 모든 죄 씻음을 받았다고 하니 아이 엄마가 실성하지 않나. 마음만 변하면 회개인가. 아니다. 생활의 변화까지 따라야 진정한 회개다. 구원은 받았다는데 삶이 구체적으로 바뀐 현장은 없으니 일반인들에겐 공허하게 들리는 거다.”

 교회의 대형화·세속화 논란도 적잖다.
“지금 대부분의 대형교회 예배는 연출이 돼버렸다. 목사도 좋은 엔터테이너가 돼야 성공했다고 인정받는다. 교인들은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가는 걸로 면피만 하려 하진 않은지,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노력 없이 십자가를 의지해 먹으려고만 하진 않은지 곰곰이 되새겨볼 때다. 한국 교회는 실천의 종교였다. 3·1운동도 교회가 주도하지 않았나. 당시 기독교인은 1.4%에 불과했지만 감옥에서 숨진 사람 중엔 3분의 2나 됐다. 기꺼이 십자가를 등에 졌던 그때의 초심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교회 세습, 평생의 멍에 물려준 것

 젊은층이 교회를 외면한다는 우려도 많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이미 50%를 넘었다. 이러다간 ‘경로당 교회’라는 비판 속에 한국 교회의 맥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 젊은이들을 만나 얘길 들어보니 근본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었다. 엄마 아빠가 교회 장로·권사·집사인데 말로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자녀들이 교회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윗세대의 말에 그냥 속아 넘어가겠나. 한국 교회의 우민화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는데.
“종교개혁의 핵심은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이었다. 종교개혁자들에겐 말씀이 실재였다. 말 자체는 허공에 뜬 것이다. 대응하는 현장이나 사물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컵이란 말도 컵이란 대상이 없으면 단지 소리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은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에 대입하려는 운동이었다. 베드로 성당을 지으면서 ‘동전 소리가 땡그렁 나면 지옥에 있던 영혼이 하늘나라로 간다’는 거짓말로 헌금을 끌어모으자 ‘그건 성경 말씀이 아니다’는 게 루터와 캘빈의 주장이었다.”
 한국 교회는 어떤가.
“교회마다 성경공부에 공을 들인다. 제자훈련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큰 모순을 낳았다. 목사들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부하려면 교회에 계속 나와야 하니까 이 프로그램을 통한 네트워킹으로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두고자 했다. 교인들도 서로 교류할 수 있어 좋았고. 한마디로 그물망을 잘 짠 거다. 문제는 거기서 머물렀다는 점이다. 성경공부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이 바뀌도록 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스승이 없는 제자훈련이 돼버렸다. 한국 교회도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한국 교회’라는 손봉호 교수의 지적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홍 목사는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구절로 자신의 생각을 대변했다. “어찌 보면 쓴 것만 내 돈이지 모아놓은 돈은 나와 상관없는 거다. 종교개혁자들도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놓은 것’이라 하지 않았나. 인간이 청지기라면 하나님의 선한 뜻에 맞게 쓰는 게 당연하지 않나. 또 그래야 자기 절제가 되지 않겠나.”

 교회 세습 논란도 뜨거운데.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 교단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아들에게 평생의 멍에를 물려줬다는 점이다. 이전에 세습했던 2세 목사들도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더라. 그 멍에를 왜 물려주나.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게 너무 크고 좋아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세상적인 욕심일 뿐이다. 그래서는 하늘에 쌓을 수가 없다. 그러곤 교인들에게만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니 무슨 설득력이 있겠나.”

고난 없는 부활은 빈껍데기일 뿐

 부활절의 의미를 찾는다면.
“부활절 앞엔 반드시 고난주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부활의 영광만 강조했지 부활 전의 고난은 소홀히 해왔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실체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먼저 희생하고 먼저 낮아지는 일상의 삶을 통해 고난을 감내해 나갈 때 부활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어떤 것부터 바꿔가야 한다고 보나.
“너무 큰 문제가 돼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 건 한국 교회가 자아 성찰의 능력을 상실한 것과 무관치 않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전에 30분간 어제의 삶을 하나씩 되새겨본다. 내가 말로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그릇된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세상의 유혹에 넘어진 적은 없는지. 회개하다 보면 끝이 없다. 회개는 곧 자아 성찰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성도들 중에도 눈에 보이지 않게 묵묵히 삶으로 실천하는 분이 적잖다. 이들이 한국 교회의 희망이다.”
 후배 목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전 세대를 흉내만 내려 하지 말고 넘어서길 바란다. 그게 진정한 선배 대접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면 기존 사고의 노예만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자기가 쌓아놓은 것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경험을 신뢰하지 예수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믿음은 곧 신뢰인데, 신뢰하지 않고 어찌 믿는다 할 수 있겠는가.”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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