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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청약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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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부 기자

김원배 경제부 기자

29일 0시 1순위 당첨자를 발표한 디에이치자이개포(개포 주공 8단지)는 정부가 만든 ‘로또’다.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이번 청약은 논란이 많았다. 위장 전입으로 가점 항목인 부양가족 수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신혼부부나 다자녀·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급에서 만 19세 청약자가 당첨됐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이 가장 작은 것도 분양가가 10억원을 넘는다. 부모에게 증여받지 않는 이상 자력으로 계약금과 중도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무주택 서민에게 아파트를 우선 공급한다는 청약가점제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시장에서 9억원은 고가주택을 가르는 기준이다. 9억원을 넘으면 1가구 1주택이라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고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 세율도 3%로 높아진다. 이 기준에 따라 HUG는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곳은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하지 않는다. 서민용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9억원을 넘는 고가주택을 현 방식대로 분양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지금까지 기다리며 높은 가점을 쌓은 무주택자는 제도를 유지하길 원한다. 정부가 제도를 다시 바꾸면 정책의 안정성이 흔들린다. 한편으론 불만을 표시하는 1주택자도 적지 않다. 현 청약제도에선 강남권에 고액 전세를 사는 무주택자가 비강남권의 보통 수준 아파트에 사는 유주택자보다 유리하다. 1주택자는 재산세를 내며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기여했지만 청약에선 뒤 순위로 밀린다.

문제는 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이상 강남 로또 아파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세와 분양가의 차이가 크다면 채권입찰제를 실시해 차액을 국가가 직접 환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임대주택을 지으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본다. 역대 정부가 임대주택을 많이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전체 주택 중 장기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6.3%(2016년)에 그친다. 개포 주공 8단지는 원래 공무원용 임대아파트였다. 이곳에 임대주택을 새로 지어 공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데 아파트 청약에만 로또가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7일 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에 5년간 50조원을 쓰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올해 8~9월께 250곳을 선정한다는데 재생이 필요한 곳이 전국에 250곳뿐이겠는가. 도시재생 사업도 자칫하면 특정 주민에게만 개발이익을 안겨 줄 수 있다. 정부 재정은 유한하다. 보다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선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김원배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