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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출산은 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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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

미국에 사는 주재원에게 들은 얘기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아이를 더 안 낳겠다고 한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단다. 이웃 가족도 동시에 아이를 가져 동네에 임신부가 4명이나 됐다고 한다. ‘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 풍경이 떠올랐다. 그해 합계출산율은 1.6이었다.

이 가족은 왜 생각이 바뀐 걸까. 우선 남편의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저녁 회식 문화가 없는 데다 술집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여느 미국 아빠들처럼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30분, 한국 남성은 45분이다. 물리적 거리 때문에 며느리·사위 역할은 면제다. 당분간 집 걱정도 덜었다. 사교육비도 거의 안 든다.

국내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3년째 출산율 1위 세종시다. 지난해 출산율은 1.67로 OECD 평균(1.7)에 가깝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일자리, 비교적 싸게 장만한 집, 직장·주거 근접 덕분에 삶의 질이 높다. 한번은 세종시에서 저녁 모임을 하는데 한 남자 공무원이 집에 가서 아이들 식사를 챙겨 주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청년층이 출산을 선택할 것 같다. 하지만 모두에게 이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새로 세우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불가능에 가깝거나 오래 걸린다. 특히 정부가 예산과 정책만으로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 지침을 의결하면서 어김없이 저출산 대책에 예산을 중점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증액이 능사는 아니다. 10여 년간 거액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역대 최저(1.05)로 떨어졌다.

오스트리아 인구학자 볼프강 루츠는 ‘저출산의 덫’ 가설에서 출산율이 1.5 미만으로 떨어져 그 수준이 상당히 오래가면 1.5 이상으로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가임 여성 수가 줄고,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도 줄며, 미래 기대 소득이 소비 열망에 못 미친다고 판단하면서 자녀를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딱 한국 상황이다.

이쯤이면 인적 자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출산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일본처럼 자동화와 인공지능, 로봇 기술 등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함께 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대다수 청년은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고 질문한다. 취업난이 사라지고, 차가 덜 막히고, 오염 배출이 줄고, 집값이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출산이 늘면 좋겠다. 하지만 객관적 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낳고 싶으니 지원해 달라는 젊은 층뿐아니라 왜 낳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청년들에게도 응답해야 한다.

박현영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