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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하는 사법부<1>|정치흥정 거부하는 "사법 쿠데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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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새 헌법 104조 2항이다. 이번 법관서명운동, 즉 「6·15소장법관성명」을 낳게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 조항이다.
구 헌법과 달라진 것은 「대법원판사」가 「대법관」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라는 8자가 추가된 것뿐이다.
지난해 6·29선언에 따라 개헌작업을 벌인 여·야당이 크게 이의없이 합의했던 내용이 작은 불씨가 된 것이다.
「대법관」이란 명칭은 하급법원의 법관과 대법원판사를 구별하고 최고법원 법관을 높인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4·19이후 민주당정부 시절까지 쓰여지다 너무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대법원판사」로 바뀌었으나 법원 내부에서는 계속 쓰이던 것으로 법조계에선 낯선 말이 아니었고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국회의 동의를 얻어」라는 구절이 여당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새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이었다.
대법원장의 임명 때를 제외하고 법관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판사 임명때 국회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법사위 같은 특별소위원회의 동의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례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회동의는 본회의 통과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돼있다.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했으니 국회동의과정이 순탄할리 없고 야당몫을 요구한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미 김용철 대법원장이 대법원판사로 있던 대법원에서 사형확정판결까지 받았던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현 사법부의 전면개편을 국회개원 전부터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야당총재가 대법원장 교체를 요구하고 나서자 다급해진 것은 정부·여당이었다. 5월말쯤이었다. 어차피 야당과 손잡지 않으면 대법원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때문이었다. 대법원장을 정부·여당의 추천인물로 하고 나머지 13명의 대법관 자리중 일부를 야당몫으로 할애해야할 입장이 됐다.
정부·여당은 그때까지도 김용철 대법원장의 유임으로 굳어져있었다. 6공화국초기 한때 대법원장 교체설이 나돌았지만 잠시뿐이었다. 김 대법원장보다 나은 인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는게 첫째 이유였다. 또 김 대법원장의 고교 후배인 청와대 P보좌관이 강력히 연임을 주장한다는 설이 파다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문인귀 대한변협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재야법조계의 경질주장을 듣는등 사법부 개편을 둘러싼 진통이 표면화된 것도 이때였다.
여야의 막후협상설도 나돌았다. 심지어 대법원 측근 인사들이 직접 야당측과 접촉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공공연했다. 대법관자리를 놓고 정치적으로 「산술적 흥정」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때맞춰 대한변협은 대법원장의 경질을 요구하며 네가지 적격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사법권의 독립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 둘째 법조경력 30년 이상으로 법조계의 존경을 받는 사람, 셋째 60세 이상으로 민주화시대를 이끌어갈 사람, 넷째 정당참여 경력이 없거나 정당적 색채가 없는 사람이었다.
법관이 「고독한 성직」으로 통하던 것은 옛말이었다. 법관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이자 선망의 대상이던 대법관 자리가 정치인들의 흥정대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법부 수장으로 가장 명예로와야할 대법원장 자리도 더이상 존경의 대상으로만 남을 수 없게됐다.
민주화의 열기가 봇물 터지듯 각계각층에 퍼져나가고 있었으나 사법부 고위층이나 행정부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있는 것 같았다. 특히 사법부는 워낙 보수적인 체질에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눈치만 보아온 탓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법부의 일원인 우리 법관들은 과연 우리들이 우리 국민의 높은 민주의식에 따라갈 수 있을지 숙연한 두려움마저 느끼며….』『…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그 역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는 이제 더이상 방치하여 둘수 없는 상태로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스스로가 더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므로 이제 필요한 최소한도의 의사라도 표시하고자 합니다….』
「6·15법관성명」은 사법부로서는 바로 쿠데타였다. 내부의 분위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채 외세를 좇아다니기에 급급하던 대법원 수뇌부는 뜻하지 않은 내만에 의해 쓰러지고만 것이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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